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지도 어언 50여 일 남짓 지나갔지만, 벌써 몇 달이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기가 찬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나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참으로 정권이 바뀌었구나 하고 실감을 하게 된 것은 5.18 광주 묘역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제청’으로 바뀌고, 국정교과서도 폐지되었다. 모두가 다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할 사항들이다.

5·18 묘역에서 거행된 기념식장에서 현직 대통령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모습을 보며 과연 정권의 힘이란 막강하고 무섭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흐를 정도다.

특히 이번 인사(人事)의 면면을 보면 우선 청와대 하나를 보더라도 주사파, 사노맹출신이 주요 요직을 차지했고, 그 외도 운동권 학생회장 출신들이 비서진에 대거 포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료 상당수가 과거 정부와 이념을 달리하는 인사(人士)들로 구성되고 있는 등 문재인 정부의 기류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하나같이 이념은 물론 도덕적으로도 부적격자들을 추천, 국민들을 당혹하게 만들고 있다.

앞서도 외교부 장관도 그렇지만, 자신들이 추천했던 후보자들에게, 도덕적으로 잘못된 문제를 거론하면 ‘여당 발목 잡기’라는 식으로, 완전하게 ‘흠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며 규정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야당이 여당의 발목을 잡은 것이 아니라 여당이 문 대통령이 선거 때 제시했던 ‘5대 인사배제원칙’ 때문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한마디로 장관을 할 정도로 도덕성이 있는 사람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결국 청문회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지금의 청문회는 어차피 손을 봐야 하는 어정쩡한 타협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청문회와 상관없이 대통령은 장관을 임명할 수 있어 요식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야당은 후보자들을 망신주고, 청와대는 그러든 말든 임명하는 정치 싸움에 이골이 나 있다. 현재는 여당의 신분으로 바뀐 더불어 민주당 역시 야당 시절에는 지금 야당처럼 골탕먹이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지 않았던가.

변하지 않은 건 야당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관을 임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틈새에 낀 장관들은 업무 시작도 전에 온갖 수모를 겪으며 치욕을 감수해야만 했다.

과거나 지금이나 청와대는 국회를 비난하며 국민을 찾는다. 지금 문 대통령은 스스로 한 약속을 깨면서도 한편으로는 협치를 부르짖으며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 이라고 대통령 특보가 말했다. 그러나 ‘청문회는 참고용’ 이란 오늘의 청와대다. 과거를 잊고 오만 방자하니 대통령의 청문회 탓에는 유체이탈이란 비난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누가 뭐라 하던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높다. 여전히 80%대로 하늘을 찌르듯 높다. 누가 이런 지지를 몰아줬나? 말할 것도 없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이 크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표를 몰아주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지금의 야당이다. 야당은 존재감마저 상실했고, 전의도 잃었다. 특히 자유 한국 당을 보면 속상하고 답답하다. 집권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기득권을 지키는 것만으로 만족해 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무엇보다도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반성이 없다.
 
남의 탓만 하며,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고민하는 모습도 볼 수 없다. 반성도 없고, 고민도 하지 않는, 그런 정당에 국민들이 어떻게 정권을 맡기려 하겠는가.

그런데도 자유 한국당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당권 싸움에 빠져 있다. 탄핵을 결정적으로 주도하고 당의 분열을 자초한 ‘바른 정당’도 마찬가지다.

탄핵의 1등 공신인 바른 정당은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에 대해 국민들에게‘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차기 총선에서의 헛된 꿈을 버렸으면 한다. 비박을 자처한 바른 정당의 행위는 정의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수라는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한 정당이 바로 바른 정당이다. 또한 국민의 당 역시 야당으로서 소신껏 역할을 하지 못하고, 광주와 전라도 눈치 보기에 급급한 것이 국민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기만 하다.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이 잘 해서기보다는 정권교체의 기대감에다 앞선 박근혜 정부가 만들어낸 실망의 그림자가 워낙 짙다 보니, 여당은 어부지리로 ‘인사’가 개판이고, 대통령이 국민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하늘을 치솟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근혜’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이 나라를 망쳤다며 불통 적폐청산을 다짐한 문 대통령이다.

이렇게 전임자와 반대로만 가면 인기에 박수가 쏟아지는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권의 적폐인사를 따라하는 청와대가 되어버렸다.

부실검증, 내각에 장관 후보가 낙마하고,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거나, 이해를 구하지 않는 행태마저 과거 정부를 빼닮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똑같은 덫에 걸린 게 청문회 따로, 장관 임명 따로 만이 아니라 어떤 사안에 대해 전 정부처럼 공론화가 생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우기고 고집을 부리면 국회도 무시되는 것이 똑같다. 이것이 독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 가. 언제부터인가 문 대통령의 장관 등 주요인사 발표에서 모습이 사라졌다.

6월 들어서는 인사 담당자인 청와대 인사 수석도, 청와대의 얼굴인 국민소통수석(홍보수석)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대변인만 삐죽 얼굴만 내밀고 홀로 마이크 앞에 선다.

거센 논란에 휩싸였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부터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인선은 없다. 모든 인사발표는 대변인 몫이 되어버렸다.

결국 발표자 변화는 정치적 부담 때문이란 말이 떠돈다. 인사 후반부로 갈수록 흠결 있는 후보자가 다수 발탁되는 것과 무관치 않다.

구(舊)질서 붕괴가 문제가 아니다. 신(新)질서가 나와야 한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신질서는 “국민과 소통하고 주요 사안은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역시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있으나 마나 한 청문회로 조각(組閣)에 차질을 빚고, 추경예산 등에 국회가 멈춘 마당에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시간 낭비만 하고 폭넓은 인사에 장애를 느낀다는 청문회는 폐지하자. 그리고 국무총리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지명하도록 하자. 굳이 사생활까지 들춰내며 망신만 주며 국회의 권위도 무시되는 청문회는 시간 낭비, 국고 낭비다.

이번에도 세 명의 후보자가 부적격자로 지목되고 있지만 청와대가 지명 철회를 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

매미가 나오는 성어 중에 재미있는 것 하나가 당량포선(螳蜽捕蟬)이다.

어느 날 장자가 사냥을 나갔을 때, 까치가 날아와 밤나무에 앉았다. 화살 시위를 당기려다 자세히 보니 까치는 풀잎에 앉은 사마귀를 잡으려 하고, 사마귀는 나무에서 울고 있는 매미를 잡으려고 하는 것을 보았다. 장자는 모든 이익 앞에 자신의 본 모습을 잃는 것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쏘려던 화살을 거두었다.

모두가 자신들의 이득을 얻는 데만 정신이 팔려 위험을 보지 못한 것이다. 특히 항상 정적(政敵)이 있기 마련인 대통령과 위정자들이 알아야 할 성어인 것 같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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