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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는 것을 아까워 말라
2017년 06월 15일 (목) 16:44:50 안호원 egis0191@hanmail.net
자광(藉光). ‘남의 남는 빛을 사용하다. 남의 덕을 보다.’라는 뜻이다.

깔 자(藉)란 혼동하기 쉬운 글자는 깐다는 뜻 이외 자리란 의미로는 독음이 ‘자’ 이지만 짓밟다, 엽신 여기다란 뜻일 때는 ‘적’ 빌리다, 의지하다, 란 뜻일 땐 ‘척’으로도 읽는다.

남의 남는 빛을 쓴다는 이 성어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남의 덕택에 거저 이익을 보게 된다는 뜻이다. ‘남의 떡에 설 쉰다.’는 속담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아도 노력도 없이 남들 덕으로 편리를 본 얌체를 미워했던 듯한 말이기도 하다.

조그만 도움이라도 받은 사람은 감지덕지한다. 반대로 자신이 크게 힘을 쓰지 않았으면서도 남이 조금만 잘 된다 싶으면 자신을 자랑하며 온갖 생색을 다 내는 사람도 더러 있어 미간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 자기도 남에게 도움을 받을지 모르는데 참으로 낯간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태초부터 인간은 더불어 살도록 지음을 받았고,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는 더불어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축복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상대방을 축복하고 그 축복으로 하나님의 평안을 이루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토록 우리에게 소외되고 가난한 자를 위해, 이방인을 위해 그들과 더불어 살라 하신 것이 아닌지 모른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뿐만 아니라 미운 자들과도 함께 해야 한다.

'더불어 함께 산다'는 것은 입으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들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처럼 베풂과 나눔으로 살아야 한다.

결국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말이다.

한 일화가 생각난다. 중국으로 건너간 달마대사가 양나라 무제를 만났을 때 일이다. 나라 안에 엄청난 수의 사찰(寺刹)을 세웠던 무제가 달마대사를 만나자 우쭐하는 마음에서 "나의 공적이 얼마나 되는가?"하고 물었던 것이다.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과연 달마대사가 무슨 말로 대답을 할 것인지 궁금해하며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예상외로 달마대사의 답은 아주 간단했고 짧았다. "무공덕(無功德)입니다" 불교에서는 선업(善業)도 업이고, 악업(惡業)도 업으로 보고 있다.

행함도 한 바가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짐으로 업보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달라이라마는 "오른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 성경에도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도 결국 이와 마찬가지로 일맥상통한 것이라 생각된다.

"좋은 일은 남몰래 하라"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이 그리 만만치는 않은 것만 같다. 좀 더 말을 하자면 '남몰래'가 아니라 '나 몰래'라는 표현이 옳을지 모르겠다.

핵심은 내 마음에 남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즉, 선행을 했어도 할 일을 했다는 마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게 된다는 것이다.

두 주먹 불끈 쥐고 태어나면서부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네 인생이다. 그런 인생이기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온전히 멈춰 본 적이 없다. 아울러 멈춘다는 것에 대해 커다란 두려움을 갖고 살며 자신을 뒤돌아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석가모니는 그런 인간을 향해 멈추라고 한다. 왜 멈추라고 했을까? 여기서 석가모니가 멈추라고 한 것은 우리에게 숨 쉬는 것을 멈추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고질적인 '에고'의 멈춤을 말하는 것이다.

중생들이 세상 삶 속에서 낙오되고 실패를 할까 두려워 멈추지 못하지만 멈추는 그 순간 지혜가 샘솟아 난다는 것이다. 내가 멈출 때 비로소 '나'라는 테두리가 없어지면서 내가 무한한 우주에 꽉 찬다는 논리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우리에게 멈추라고 한 것이다.

예수님도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내 이웃이 내 몸과 같이 느껴질 수 있을 때 비로소 '나'가 멈추는 순간이 되는 것 같다. 이는 그 순간 이웃이 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결국 예수의 사랑도, 석가의 자비도 마찬가지다. 모두 나(滋我)가 멈춘 자리에서 선행을 베풀 수 있는 거다. 그래서 멈추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옛 속담에 '광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베풀고 나누는 것은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돈이 없어도 베풀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게 얼마든지 많다.

하나님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어리석은 부자에게 한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자.

이 말씀은 부자가 생각하고 있는 가치기준이 참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동시에 물질만능주의, 배금사상에 빠져있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좋은 교훈이다. 아무리 물질이 풍족하더라도 영혼을 빼앗겨 버리는 그런 어리석은 부자는 가장 불행하고 가련한 존재이다.

옛 선인들이 추수 때 들녘에 가난한 자들을 위해 곡식 낱알을 남겨 놓듯 이웃을 위해 남기는 미덕을 보이며 따뜻한 관심을 보이는 우리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 안타깝게도 작은 일은 크게, 가벼운 일은 무겁게 만들지 못해 안달이 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지금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올바른 가치관을 갖는 것이다. 죽은 가치와 산 가치를 판단해야 한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한 나머지 정작 더 중요한 영혼의 구원을 돌아보지 않는 어리석음을 보이는 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베풀 수 있을 때 베풀고 나누자. 그리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남겨두는 즐거움도 만들자.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베푸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깊은 의미를 알아야 할 것 같다. 나의 재물이란 내가 쓴 것일 뿐, 남은 것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다.

[호 심송, 시인. 칼럼니스트. 한국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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