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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당칼럼 : 시간을 억누르며...
副題 : 환자의 질환과 죽음의 개념 고뇌
2017년 04월 03일 (월) 11:04:37
극동지역 대한민국을 떠나면 두 가지 시간을 계산한다.  한국 시간을 밧줄로 동여 놓고 현지시간을 가늠하게 된다.
2017년 2월 28일 자정에 한국의 시간을 억누르며 터키 이스탄불로 향했다. 밤잠을 거르며 13시간 이상을 갔는데 이스탄불 도착한 시간은 28일 새벽 5시다. 스마트폰 화면에선 한국 시간 13시20분을 가리켰다.


한정된 시간을 고무줄처럼 늘려놓은 착각을 만들어 보너스 인생을 맞이했다는 기분으로 이스탄불에서 맞이한 새벽은 희열케 했다. 사실 시간차를 말하는 것은 그 시간을 정해 놓은 선에서부터 우리나라와 거리의 차이일 뿐이고 실재로는 동시에 일어난 상황인데 말이다. 결국 하루의 시간대에 낮이나 밤이 오는 시간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어찌됐던 여행은 일상에서 멀어져 과거의 영상을 관람하는 현실을 준다. 시공간적으로 현실과 멀게 하고 그런 착각이 여행자에게 자신을 관조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광활한 지평선으로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진 올리브나무. 가로 새로 대칭으로 줄 맞추어 구름 속으로 이어가는 포도나무. 땅과 땅 사이에 있는 바다 지중해(地中海). 포르투갈 땅 끝 마을 ‘까보다로까’에서 보는 대서양의 해평선(海平線).


유럽을 이어가는 열차 속에서 창문 밖에 흐르는 자연경관은 나의 인생을 관조케 했다. 
우리 부부 앞에 앉은 고희(古稀)를 맞은 형님 부부.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것이라 여겨 조카들에게 도움을 얻어 형제부부가 첫 여행을 했다.

여행 가이드가 올리브농장을 보고 ‘올리브나무는 몇 백 년을 산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의 차이일 뿐 언젠가는 생을 다한다. 올리브나무의 생에 대한 가치는 뭘까? 올리브를 생산한 양에 대한 기준으로 그 가치가 평가될 것이다.


사실 이번 여행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걸 생각했기에, 결국 노년을 맞이한 형님부부도 무거운 인생을 돌아보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생각하기 어려운 생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해야 하는 여행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추구한다. 그러나 결국 인생을 마감하는 죽음은 인간 개체 스스로가 책임 할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자연계의 흐름이다.


사람들은 환자가 되면 의료시스템에 의지한다. 그 중 절반의 환자는 요양원에서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회생할 수 있는 환자는 중환자실을 거친다. 그러나 그 다음은 가정으로 돌아간다. 결국  식구들의 돌봄이 어려워지면 요양원(Nursing Home, 혹은 Assist leaving Center)으로 간다. 요양원(療養院)은 처음에 치료개념의 시설이었다. 또 넘치는 병실을 비우고 가동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최근 요양원은 고려시대의 고려장(高麗葬)을 연상케 한다.


사실 필자의 어머니는 93세에 작년 5월 5일에 소천하셨다. 약 1년 동안 형님 내외가 몸소 돌보아주셨다. 과정에서 요양원으로 모시자는 이야기가 있었다. 노모님은 꺼져가는 기력 속에서도 기를 모아 또렷한 정신으로 ‘집에서 죽겠다!’ 하셨다.
노모님은 질병의 아픔이 없이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좀더 먹고 싶다’는 말씀이 많았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말라갔다. 결국 앙상한 뼈만 남겨 놓고 미이라처럼 돌아가셨다. 질병이 없이 생을 다하셨다.

필자에게는 요양원 인식에 대한 이야기가 또 하나 있다.
5년 전 장인어른이 원자력병원에서 숨을 거두셨다. 돌아가신 전날 가족회의에서 ‘집 가까이에 있는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했다’고 알렸다. 장인어른은 그 다음날 새벽이 오기 전에 돌아가셨다. 필자의 아내는 자신이 요양원으로 모신다고 알려 준 것이 원인이라고 소천하신 후 수개월을 아프게 후회했다.

 
장인어른은 질병이 림프종이었다. 처음에는 某대학병원에 입원했다. 림프종 말기라 했다. 의사들의 판단으로 80세 나이에 수술을 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반대하고 싶었으나, 사위자식 남의 새끼라는 평이 두려워 처남의 결론을 기다렸다. 결국 수술을 했다. 의료진은 ‘성공적인 수술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수술은 기술적인 성공이었던 것이고 질병을 퇴치하는 성공은 아니었던 것이다. 의사들의 또 다른 치료방법, 임상에 대한 ‘환상공부’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최근 의료기술의 발달은 첨예하고 눈이 부시도록 발전하고 있다. 미래의료기술로 조명받고 있는 정밀의료(Precision Medicine) 중에서도 유전자를 자르는 기술인 크리스퍼(CRISPR)가 요즘 바이오생명과학분야의 새로운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찍이 GMO(Genetically Modified Ogranism:유전자 변형 농산물) 콩이나 옥수수가 그랬듯이 요즘 생명과학자들이 유전자 DNA를 자르고, 붙이고 삽입하여 유전자 조작 기술로 새로운 생명산업으로 꿈꾸고 있다.


소위 환자개별 맞춤의료(Personalized Medicine)에 새로운 신기루로 희망한다. 그런데 진정 이러한 의술의 발달이 환자들에게 아니 인간에게, 인류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설혹 새로운 형태의 육체적 고문을 가한 것은 아닌지? 진실하게 의심해 봐야 한다.


과학의 발달과 인간이 안고 있는 질병과 죽음은 엄연히 다른 개념에서 분류해야 한다. 인생의 마지막 행사인 죽음을 의술로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라면 환자나 질병의 개념에서 분류해야 한다. 의료진들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고 평가하여 선을 그어야 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죽음을 환자로 연계하여 의술의 지표를 확대하는 허무현상이 의사들의 명예로움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그 한계를 재단(裁斷)해야 한다.

죽음은 논의하는 것이 어렵다. 왜냐하면 인간 모두가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경험한 자가 없기 때문이다. 
노인시대에 노인에 대한 경외감이나 사회 윤리적 차원에서도 그 존엄성은 격감됐다. 그동안 노인(老人)이라는 자체만으로 익은 사람이라 하여 존경받아 온 이유는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경험한 노인들의 지혜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젠 경험, 지혜 그 모두가 인터넷 지식창고에서 검색으로 대처한다.

어느 노인이 ‘아름다운 젊음은 우연한 자연의 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작품!’이라고 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럽의 창구인 모로코에서 작은 태풍을 만났다. 시간을 억누르고, 밧줄로 묶은 시간은 서울에 돌아와 보니 열이틀이 고스란히 지난 3월 10일었다. 시간은 이어가지만 한계에 다른 인생 노년의 아픔은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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