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대명사는 추석이다. 우선 계절보다 추석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추석은 고향과 포근한 어머니의 동의어다. 이맘때쯤 이면 공연히 고향과 어릴 적 친구들이 생각이 나면서 가슴이 축축해짐을 피부 깊숙이 느끼게 된다.

그리고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리운 어머니의 모습이다. 극심한 경기 불황과 정치적 불안 속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맞이해야 하는 추석.

올해도 민족 최대 명절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럽고 외로운 연휴를 보내는 사람들이 늘 것으로 우려된다.

사회복지단체 후원금이 축소되고, 각종 보호시설의 방문객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 기부 불황이 현실화되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의 풍성한 인심을 노래하던 말도 우리들로부터 잊혀가고 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각종 보호시설들은 그야말로 경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리고 있다. 대부분의 보호시설에서는 “보호아동들에게 명절 음식도 못 차려 줄 것 같다”라며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서울 임대 아파트에서 기초생활수급자인 어머니와 장애자인 형. 누나와 함께 살고 있는 김 모군(초등학생)은 추석 연휴 때는 점심을 못 먹는다며 차라리 우리에게는 추석 명절이 없는 게 더 좋다고 말한다. 연휴로 인해 그나마 학교에서 주는 급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호단체의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올해 경기 침체와 정치권의 불안 등으로 기업이나 개인들이 모두 기부를 꺼리고 기부도 줄어들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렵고 외로운 명절을 보낼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면 팔월 추석을 또 다른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사는 환경이 아니라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감사의 마음이 생길 때 풍요로운 마음이 된다.

스트라스 보그의 타울러는 14세기의 위대한 성자이자 신비주의자로 유명한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남루한 차림의 늙은 거지를 길에서 만나게 되었다. 타울러는 그 거지에게 “형제여, 하나님께서 형제에게 좋은 날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인사를 했다.

그러자 “저는 한 번도 나쁜 날을 가져본 적이 없답니다.”라고 즉답을 했다. 이 맹랑한 거지의 답변에 당황한 타울러는 잠시 할 말을 잃어버릴 정도가 되었다. 타울러가 “친구여! 하나님께서 친구에게 늘 행복한 날 주시기를 빌겠네.” 하고 재차 인사를 하자 그 거지는 “저는 한 번도 불행한 적이 없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에 타울러는 더욱 난감해져 “아니 한 번도 불행해 본 적이 없다고? 자네 그 말이 진정으로 하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날이 좋을 때나, 비가 올 때나 늘 저는 하나님께 똑같이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먹을 것이 풍족할 때나, 부족해서 굶을 때나 역시 하나님께 감사하게 생각하지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 결국 저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언제나 저를 기쁘게 만들지요. 그래서 단 한 번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타울러는 이 괴상한 거지의 대답에 아연실색하며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말하는 자네는 도대체 누군가?”라고 되물었다. 그 거지는 망설임도 없이 “저는 왕입니다.” “왕? 자네가? 그러면 자네의 왕국은 어디인가?”

초라한 모습의 이 거지는 조용히 그러면서도 확신에 차있는 낭낭 한 음성으로 “저의 왕국은 내 심령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 감사가 절로 나올 수 있다. 감사는 곧 베풂이기도 하다.

추석은 조상님께 감사하는 명절이다. 드높은 하늘과 반짝이는 황금들판, 오곡백화가 만발하며 무르익는 풍요로운 계절, 한 가위. 특히나 고향은 언제나 우리 모두에게 그리움과 설렘의 대상이다.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이자 심신의 활력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의 고향, 이웃과의 베풂 등 이러한 넉넉함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예전에 우리에게 희망과 꿈을 안겨 주던 가을 들녘은 찾아 볼 수 없다. 마을 회관 담 벽 햇살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어린 시절 친구들도 없다.

대부분 도시로 떠나면서 늙은 부모들과 오래된 정자나무만 적막하게 남아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많은 귀성객들로 인해 분주해지고 교통체증으로 도로는 막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어머니와 고향의 향수를 못 잊어하고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나눔의 추석 명절, 내 가족과 함께 외롭고, 쓸쓸하게 지낼 이웃에게도 관심을 갖고 베푸는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 고향을 가지도 못하고, 가족들조차 만날 수 없는 이웃 사랑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할 수 있는 팔월 한가위가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작은 관심과 따뜻한 사랑이 또 다른 이웃에게 감사와 함께 기쁨을 주는 풍성한 사회를 만들어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성경에도 보면 “말세가 되면 사람들의 심령이 무디어져서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도 모르고,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 허망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올해도 한가위를 맞이해 온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못다 한 얘기로 꽃도 피우고, 모처럼 만난 고향 친구들과 정담도 나누는 뜻깊은 추석 명절이 되기를 빌며 모두가 고향 길 잘 다녀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6:9말씀이다.

[시인.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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