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은행이나 백화점 등 주로 서비스센터에서 직원들로부터 흔히 듣는 말이다. 한결같이 상냥하고 친절하다.

혹 고객이 억지를 부리고 난동을 피워도 웃으며 말한다. 특히 하나같이 고객에 대해 존댓말을 한다.

사람이 존댓말을 할 때는 뇌의 전두엽이 활성화되면서 감정을 담당하는 측두엽의 활동을 억제해 흥분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적어도 존댓말을 쓰면서 미숙한 자기감정을 그대로 배설하며 막말과 분별없는 행동을 일삼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필요 이상의 존댓말이 남발하기도 한다. ‘님’ 이 그 대표적인 말이다. ‘고객님’ ‘아버님’ ‘어머님’ 등등, 모든 사람들이 저들처럼 상냥하고 친절하면 이 사회는 밝고 맑은 사회가 될 것이다. 저렇게 친절한 직원의 가정은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그런데 정신과 전문의는 그런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스트레스를 받으며 우울증으로 고생을 하는 감정노동자라고 말한다.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직업’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객에게 시달려도 의젓한 표정의 가면으로 속내를 감춘다. 반말로 일관하는 직장 상사들도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주범이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것도 감수성과 상상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중노동이다.

그런 상황에서 지친 상태로 집에 들어가면 “저녁은?” “당신 좋아하는 반찬 해 놨거든”라는 가족의 말에도 대꾸하기가 싫고,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아닌, 무표정한 얼굴로 잠을 청한다. 이 같은 현상은 의학적으로 보면 모두가 감정 노동자에 해당된다.

감정관리 활동이 직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 감정노동자라고 하는데, 고객 응대가 많은 금융계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은 감정관리 활동이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감정노동자는 기자도 예외는 아니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자신이 쓴 기사가 삭제되거나, 선배가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기사 내용을 고쳤거나, 제목을 달았을 때 부장에게 기사 똑바로 쓰라고 꾸지람을 들을 땐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표정을 연출해야 하는 감정노동자가 되게 된다.

월급 많고 대우 좋다는 대기업, 그런 대기업에 다니는 직원일수록 신경이 곤두서 소화불량에 걸린다고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감정노동자가 된다.

한 취업포털사이트에서 1200명에게 설문지를 돌렸더니 응답자 중 86.2%가 현재 직장에서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가장 많이 숨긴 감정은 분노. 섭섭함과 우울 감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 5일을 정신적. 감정적 고통을 밥 먹듯 경험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넘어서 트라우마 현상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스트레스는 순간적인 압박감과 짜증으로 인해 발생하지만, 상황이 끝나면 사라진다.

그래서 스트레스는 우리의 힘으로 이겨낼 수도 있다. 그러나 트라우마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어떤 상황이 끝난다 해도 마치 영원히 간직해야 하는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아픔이다.

한 예로 사랑하는 이의 죽음, 총격이나 테러 같은 사건을 목격했을 때의 충격. 그런 사건들이 바로 트라우마가 되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일시적 기분이지만, 트라우마는 인생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트라우마는 ‘이전의 삶’ 과 ‘이후의 삶’을 완전히 다르게 구별 짓는 치명적인 상처다. 감정노동을 하는 현대인들은 안타깝게도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구분하지 못해 심각한 트라우마를 별것 아닌 스트레스로 착각하고 가볍게 여기는 경우도 있다.

스트레스가 국소부위 통증이라고 한다면 트라우마는 뇌혈관질환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스트레스와 달리 트라우마는 주변인의 도움도 필요하고, 자신의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커다란 관점의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증세로 의심이 될 경우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 상의하는 것도 예방 차원에서 좋은 방법이다. 전문가들은 트라우마를 조기에 치료하면 별다른 장애 없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으나, 방치하거나 하면 자칫 범죄자가 될 소지도 많다고 말한다.

억제 감정이 폭발하면서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번 강남 화장실 피살 사건처럼 불특정 대상으로 묻지 마 범죄가 발생할 소지가 많다고 크게 우려한다. 따라서 트라우마에 대해 예방 차원에서의 관리가 마련되어야 할 것 같다.

건강보험단체에서는 현재 감정노동자로서 트라우마 증세로 뇌 등에 이상이 생겨 사회적 장애를 겪으며 혼란스러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어림잡아 5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등 심각성을 더 해주고 있다.

칼럼을 쓰는 필자의 경우에도 내가 쓴 칼럼에 대해 비난의 소리가 들릴 때면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정도로 우울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산책을 하거나, 걷거나, 또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기분전환을 하며 분노를 푼다.

존댓말을 쓰던, 반말을 하던, 인간관계의 기본은 적절한 의사소통에 있다고 본다. 유아 시절 언어를 배워갈 때 의사전달뿐만 아니라, 사회정서와 상황에 맞는 행동양식도 함께 배우게 되며, 존댓말, 반말 교육 또한 그 일부가 된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감정노동자로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존댓말하고, 미소 짓고, 친절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갈수록 불황은 깊어만 가고, 회사 밖은 뜨거운 열기를 품어내지만, 감정노동자들은 흉흉한 소리만 듣다 보니 여전히 한기를 느끼며 하루를 산다. 욕구 불만도 서글픈 사치가 되어버렸다.

[시인.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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