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와 천재 - 유달영(2)

경북대학교 윤재수 명예교수
이렇게 생각하니 용기가 솟아나고 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내가 누에를 먹으려는 결심은 이제 무엇으로도 돌릴 수가 없었을 정도로 확고해져 있었다. 누에 꽁지를 쥐고 쳐들어 입에다 넣으려고 하니, 머리를 내두르고 손가락으로 들러붙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결심이 이처럼 굳게 섰으니 놓아 줄 수야 있겠는가? 눈을 꼭 감고 입을 크게 벌리고 누에를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입속이 뜨겁고 컴컴해서인지 누에는 꿈틀거리고, 뒤틀고 들러붙고 하면서 못 견디어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딴판으로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도저히 삼켜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어금니 사이에 넣고 꽉 깨물어서 삼켜 버릴까?' 하고 생각했으나, 터진 누에가 입안에 흥건할 것을 상상해 보니, 이건 참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깨끗한 누에를 고스란히 삼켜서 곱게 내 몸속에 흡수시켜야 그 '비상한 재주'가 조금도 허실이 없이 내 것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시 혼란해지려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대로 삼켜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누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야단이고, 속에서 욕지기가 나서 뱃속에 있는 것이 모두 올라올 것만 같았다. 나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다시 죽을힘을 다하여 혓바닥을 안으로 우기기도 하고, 목구멍을 크게 벌려 보기도 하고 갖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 징그럽게 큰 누에도 최대한의 저항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땀은 비 오듯하였다. 그러나 나의 의지와 인내의 욕망은 누에를 목구멍 너머로 넘기는데 기어이 성공했다. 그러나 식도에서도 위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않고 꿈틀거리고 들러붙고 야단이었다.

나는 '비상한 재주'의 5분의 1을 이렇게 삼킨 것이었다. 이제 몹시 힘이 들기는 했지마는 다음 순서를 중지할 수는 없었다. 다시 두 마리 째, 세 마리 째, 네 마리 째. 차례로 목구멍 너머로 넘기기에 성공했다. 땀은 쉴 새 없이 흘러서 중의 적삼은 물에서 건져 낸 듯이 젖었다.

이렇게 해서 다섯 마리의 누에를 저녁 밥상이 들어오기 전에 다 먹기에 성공한 것이다. 위 속에서 다섯 마리의 커다란 누에들이 한데 엉키어 꿈틀거리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비상한 재주를 뱃속에 놓고 있다.' 하는 한 가지 기쁨이 모든 힘들고 괴로움을 극복하고 말았다.

나는 잠실 문을 열고 빨리 나와 내 방으로 들어갔다. 이 비밀을 단단히 간직해야 하겠기 때문이었다. 저녁 밥상 앞에 앉았을 때에는 외숙모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시면서 "너 무엇을 했기에 옷이 그렇게 젖었니?"하고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물으셨으나, 누에를 먹느라고 그렇다고 대답할 수가 없어서 어물어물해 버렸다.

만일 내가 누에를 다섯 마리나 산 채로 삼켰다는 사실을 말해 버린다면 분명히 온 동네에 소문이 퍼질뿐더러, 다른 아이들이 곧 누에를 나처럼 먹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나의 '비상한 재주'는 아무런 보람이 없어질 것이 아닌가? 그날 나는 속이 느글거려서 저녁은 몇 술 못 뜨고 말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렇게 힘들여서 먹은 누에의 효과는 도무지 나타나지를 않았다. '며칠 후부터는 비상한 재주가 나올는지 모르지. 아니, 몇 달 후부터는 비상한 재주가 나올는지 모르지' 하고 끈덕지게 기다려 보았으나, 전에 없던 재주가 솟아나는 것 같지도 않고, 숙제도 꼬박꼬박 힘들여해 가야 했다. 꾸준한 노력을 전과 똑같이 계속해 가야 했다.

지금도 섶에 올린 굵다란 누에를 볼 때마다 내 어릴 적의 철없던 일을 회상하고 혼자 웃는 일이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만일 그 다섯 마리의 누에가 내 뱃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비상한 재주를 정말로 내게 주어서 내가 비상한 재주꾼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나는 필연코 지금쯤은 그 재주를 믿고서 교만하고 게을러져서 어떤 어둡고 슬픈 골짜기 속에 떨어져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둔함을 알고 모든 일에 노력해 보려는 이 작은 밑천마저 그 재주가 앗아 가지고 갔을 것이 틀림없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나는 점점 '비상한 재주'에 대한 매력이 없어지고, 오히려 둔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친밀과 친화가 생긴다.

진정 어리석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 보고 싶은 것이 지금 솔직한 심정이다. 나는 '비상한 재주' 가 확실히 생긴다고 하더라도, 다섯 마리의 누에를 산 채로 삼키는 일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건실한 인생을 살아가고자 할 때에 스스로 재주 없는 것을 탄식하기보다는 스스로 꾸준한 노력이 부족함을 뉘우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할 것이다. 뉴턴의 겸손과 에디슨의 노력은 그들의 발견과 발명보다도 더욱 귀중한 유산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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