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5일은 이 땅에서 6. 25전쟁이 발발한지 66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 민족의 역사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6. 25전쟁을 말할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라고도 불리는 이 전쟁은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갈라놓았고, 6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냉전 상태에서 총부리를 겨누며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국가로 기록되어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와 함께 분단국가로 남아있던 동. 서독도 냉전시대를 종결하고 하나가 되었다.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1950년 6월 25일 그래도 잊을 수 없는 6월 25일 새벽 4시를 기해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남침을 감행하며 시작된 전쟁이 3년간 지속되었으며 이 기간에 500만여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사망한 참혹한 전쟁이었다.

또 1천만 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하기도 했다. 전쟁을 치른 지 66년이 지났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때의 아비규환의 처절한 광경을 잊고 산다.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다. 모두가 해이해진 마음으로 자유를 만끽하고 산다.

그때(1950년)도 그랬지만 그들(북한)은 늘 겉으로는 평화 협상을 내걸면서도 뒤로는 무력을 휘둘러 왔다. 그리고 꼭 모두가 쉬고 있는 휴일을 선택해 만행을 저질렀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시작으로 1999년 1차 연평해전, 2002년 2차 연평해전, 최근 들어서는 천안함 피폭, 연평도 폭격 등과 같이 크고 작은 전투들이 벌어지면서 우리 국군들이 억울하게 희생을 당하기도 했다.

특히 천안함 피폭은 국가 안보의 중요성이 재확인된 사건이었다. 국경일에서 제외된 ‘국군의 날’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원호 병원에는 전쟁으로 인한 상처로 고통을 참아가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6. 25참전용사들이 있다.

꽃다운 젊은 나이에 부상을 당해 백발이 되도록 병원에서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6. 25전쟁은 잊힌 전쟁인 듯 느껴진다. 1953년 7월 27일 남과 북이 휴전협정을 맺고 휴전 상태일 뿐 여전히 대치 상태에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몇 해 전 모 여론조사 기관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6. 25전쟁도발 연도를 묻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응답한 응답자가 무려 36.9%나 되었다. 특히 연령대를 보면 20대가 56.5%대로 가장 많았고, 30대가 28.7%, 40대가 23.0%를 차지했다.

또 남침이냐, 북침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9.0%가 북침이라고 답했다. 또 유엔 참전국의 일원으로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파병되었던 미국은 ‘원수‘이고 우리나라를 분단국가로 만들고 이산가족을 만든 북한에 대해서는 ’우리 동포‘라는 사고를 갖고 있는 응답자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집계된 바 있다.

그동안 남북 관계를 완화시키려고, 남북정상회담을 하는 등 남북 간 화해를 위한 회담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우리의 염원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의 통일은 아직은 소원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이 같은 협상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지만, 반세기를 넘은 분단은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민족성의 이질화를 더욱 가속시키고 있다. 북한이 의도하는 대로 남북 갈등에 앞서 남남 갈등을 보이면서 본의 아니게 이적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로서 분단에 대한 인식이 매우 중요함에도, 마치 분단을 남의 나라 역사처럼 지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로 치부해버리는 것 같다.

이미 우리에게 이름도 잊힌 월남. 군장비도 월맹보다 월등했지만, 군과 공무원들의 부정부패, 비리, 지식인들과 교수들, 학생, 노조, 기업인들의 무조건적인 정부 타도 시위, 미군 철수 등, 결국 미군이 철수하면서 바로 몰락한 월남. 그렇게 비난만 하고, 정부를 비토 하던 그들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모두가 ‘보드 피풀’이 되면서 바다에 수장되는 비운을 맞는 것을 지켜보았다는 사실들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6. 25전쟁 66주년을 맞이하면서 일련의 과정들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지금은 참으로 위기의 시대이다. 월남 패망 때와 똑같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행태, 군 비리, 지식인, 학생, 노조 시위, 미군 철수, 반공법 철폐, 국정원 기구 및 업무 축소 등등 모두가 월남의 축소판이다. 우리가 북침을 감행했다면,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겠는가.

그나마 개전 12일 만에 미국을 포함 한 UN군이 전쟁에 참전, 북한 전 지역을 점령하다시피 했지만 뜻하지 않은 대규모의 중국 인민지원군이 개입하면서 전쟁이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고, 결국은 한국전쟁이 아닌 미국과 중국의 직접적인 전투장이 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은 군사적인 수단으로 한반도를 통일한다는 목적을 포기하고 지금의 휴전선 부근에 이르렀을 때 전쟁 종결을 희망했다. 다행일까 전쟁의 염증에 시달리던 북한이나 중국의 의도와도 어느 면에서는 일치했기 때문에 협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소련도 이 같은 사태를 직시하고 정전 의사를 표시하면서 전쟁을 중지하기 위한 협상이 진행되어왔다. 그러나 이때도 휴전 아닌 종전을 원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조금도 반영이 되지 않았다. 일제시대에서도 겪었지만, 국권이 상실되면 이런 설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은 3년간 지속되어온 민족상잔의 전쟁은 현재의 국사 분계선을 경계로 각각 2Km씩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조약에 서명함에 따라 종전이 아닌 휴전의 상태에서 지금 이 시각에서도 우리 젊은이들이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아직도 한국전쟁을 남한이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일부 시민단체 등 정치인들이 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만큼 정부를 불신하고 믿지를 못하는 것이다. 공휴일이 아니기에 그냥 지나치기 쉬운 6. 25전쟁기념일을 사회 발전의 수단으로 삼으면 어떨까.

뭔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지난 98년 7월 25일 개정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손질해야 할 것 같다. 6. 25를 비롯한 법정 기념일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모두가 다 국가 경쟁력 확보, 사회 발전, 통합에 아주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날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적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또한 분단국가임을 감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의 안보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휴전 상태에 있는 우리다. 결국 남북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원인으로 분단된 국가. 같은 민족끼리 상잔했던 비극적인 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분단의 아픈 상처가 아물지 않았기 때문에 통일이 되기까지는 6. 25전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인.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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