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살맛이 안 난다. 낙(樂)이 없다” 요즘 주변에서 참 많이 듣는 말이기도 하다. 젊은이가 되었든, 나이가 든 노인이든 너 나 할 것 없이 입에 달고 사는 것 같다.

사람들의 얼굴엔 마음속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그래서 얼굴 피부가 살아있다고 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같이 웃는 얼굴을 찾기가 쉽지 않다. 모두가 판에 박힌 무표정에 지친 듯한 모습으로 마지못해 서로를 대할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행복이란 말이 어설픈 단어가 되면서 우리 사회에서 조차 잊히고 있다. 생존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사실 행복은 언감생심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그 같은 행복은 사치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제20대 총선 결과를 지켜보면서 부쩍 기분이 우울해지고 서글퍼지는 마음이 된다. 또한 자신을 발견하면서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예상은 했지만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

도저히 될 수 없는 사람,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많이 있는 사람, 비난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압도적인 표로 당선이 된다는 사실에 허탈감을 느낀다. 야당의 독선적이고, 안하무인에 오만방자함을 또 보아야 하니 정말 살맛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낙이 없다.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말도 많은 것 같은데 막상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총선 결과가 충격적이다 보니, 정리가 안 될 정도로 착잡하다. 오늘따라 글을 쓰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생각했던 일 들을 글로 옮기는 것뿐인데, 이렇게 힘든 것은 왜 일까? 국민의 이름을 팔며, 말만 번 지르게 하고,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많은 자들이 또 국회의원이 되었으니 쓸데없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필자만의 고민일까?

문득 몇 해 전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병원이 장례식장을 짓기 위해 신축공사를 하려고 하자 ‘우리 아파트 단지에 장례식장을 세우지 마라. 아이들에게 미관상 안 좋으니 공사를 하지 마라’ 는 플랜카드를 아파트 입구 및 병원 앞에 붙인 아파트 입주민들의 이기심이 떠오른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글귀 ‘입장 바꿔 생각해 주시고’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고 지역주민들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장의 차량이 미관상 안 좋다.’는 이유로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에는 장례식장을 짓지 말라는 것인가.

특히 아파트 근처에는 절대 장례식장이 들어올 수 없다고 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장의 차량이 왜 미관상 안 좋은 것인가. 입주민이라는 익명 뒤에 숨은 진짜 이유는 자신의 사심을 교묘히 감추려는 계산이 있다.

장례식장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말에 솔깃해져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심이 결국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심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인간의 마음을 이토록 병들게 만드는 것일까?

한 작가의 글을 인용해보면 사심이란 곧 사사로운 마음이며,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것에만 마음을 쏟는 편협함이다. 사실 필자 또한 가장 끊어내기 어려운 마음이 바로 사심이다. ‘매사에 너무 잘 해내려고 하는 마음, 꼭 인정받으려고 하는 마음, 특히 ‘내 이름’이 들어가는 모든 것에 집착하는 마음도 사심이라 할 수 있다.

노력이나 최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는 이 지독한 사심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트라 우마에 빠질 위험도 높이기도 한다. 참된 지성은 자신과의 사심과 싸울 줄도 안다. 현대인의 사심은 크게 세 가지로 진화했다.

포퓰리즘, 에고이즘, 그리고 속물주의, 훌륭한 정치인은 포퓰리즘과 싸우며, 참된 지성인은 에고이즘과 싸우고, 진정한 예술가는 속물주의와 싸운다.‘ 포퓰리즘, 에고이즘, 그리고 속물주의와의 싸움. 그 싸움은 점점 각박해져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서는 끝내 버릴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선거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지만 이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 4. 13 총선에 출마한 지역구 후보들이 내건 공약(公約)이 또 공약(空約)으로 끝날 것 같다. 매해 국민들은 후보들의 행태에 대해 후회를 하면서도 언제나 그 공약(空約)에 홀려 또 표를 찍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아직까지도 지역 색깔이 강하고, 편협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층이 많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들이 내 건 공약을 이행하려면 100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올해 정부 예산(386조 4000억 원)의 2.5배를 넘는 규모다. 419명의 후보자가 지역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만한 예산이 있어야 하는데 실천이 가당하기나 한가?

책임을 묻지 않으니 선심공약을 마구 남발하며 지지를 유도하고 있다. 지역구 대표를 하기 위해 자신의 영역을 뛰어넘어 대통령 선거 때나 나올 법한 공약을 내놓으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지만 우매한 국민들은 또 그들에게 속고 있다.

무상급식, 무상교육처럼 그럴 싸 하지만 결국은 주머니 돈을 내놓는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늦은 감이 있지만 공직선거법을 개정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후보자들의 공약 검증을 담당하는 상설기구를 두어 공약의 이행 기한, 재원조달 방안 등을 제시토록 하고 그 실천 여부까지도 조사해서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

마치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은 착잡한 기분이다. 300여 명의 국회의원들 중 몇 명이나 사심을 버리고, 국민을 위해 일을 할 수 있을까?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을까? 여의도에 화려하게 피었던 벚꽃도 잠시뿐이었다.

세상은 갈수록 편해지고 변하는 데 왜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의 사심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일까. 며칠 전 문우가 들려준 말이 생각난다. “요즘 너도나도 출세(出世)를 하려고 설쳐대는데, 어머니 배 속에서 나올 때 그게 바로 출세인데, 그러니 그대나 나나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아는가. 이미 그때 출세를 했는데, 또 무슨 출세를 하려고 안달인 가”

사심으로부터의 버림은 모든 구속과 속박으로부터의 진정한 자유임을 알기나 할까. 사심을 키우는 세상에서 잠시 마음을 달랠 겸 날이 밝는 대로 뚝 방 길이라도 산책하며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잔잔한 행복에 편린(片鱗)들을 마음에 담아보아야겠다.

[시인.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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