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끔하게 차려입은 한 신사가 박물관에 왔다. 전시물들을 둘러보고 다니는데 왠지 모르게 쪼그려 앉아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보며 걸어 다니는 게 아닌가 그 신사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한 박물관 직원은 신사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런 자세로 힘들게 1층을 모두 둘러본 신사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서는 똑바로 걸어서 올라간다. 2층 전시관으로 올라간 신사는 1층에서의 자세처럼 다시 쪼그려 앉아 힘들게 걸어 다니며 전시물들을 관람했다.

이를 지켜본 박물관 직원은 ‘별 특이한 사람도 다 있구나!’ 생각했다. 다음날. 초등학생들이 박물관을 단체로 관람하러 왔는데 아이들을 인솔하고 온 선생님의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 낯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바로 어제 쪼그려 앉은 자세로 고개를 들고 전시물을 관람하고 갔던 그 신사였던 것이다. 선생님이 아이들의 시선으로 보기 위해 전날 미리 와 쪼그려 앉은 자세로 전시물들을 관람하고 간 것이었다.’

일부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 간혹 교육자 입장을 떠나 과격한 시위를 하고 투쟁을 하면서 학교와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 주변을 보면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참 교육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 선생님들이 많이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작고하신 고(故) 신영복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신 교수가 한 말 중에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의 형태’라는 말이 있다. 이는 같은 철학과 가치관을 갖는 사람들이 한 목적을 향해 함께 하는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관계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동지’(同志)라고 부르기도 한다. 뜻을 같이 하는 관계로서 사회운동이나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많이 쓰는 호칭이다. 그런데 요즘 정치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정당은 ‘입장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불나비처럼 권력자에게 몰려드는 ‘호롱’ 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동지의 개념도 사라진지 오래다.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분열을 보면서 그런 느낌이 든다. 같은 입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어느 날 다른 당으로 가면서 몸담았던 당을 비난하기도 한다.

또 자신이 비난을 했던 당으로도 쉽게 자리를 옮기며 나름대로 논리를 편다. 그들을 보면서 아무리 정치권이 의리도 없는 곳이라 하지만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었는지,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같은 입장을 주장하며 정치를 함께 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철새처럼 이 당 저 당을 옮겨 다녀도 비난은커녕 재선, 삼선, 다선의 관록을 자랑하며 우쭐 되는 모습을 보인다. 정책도 소신도 없이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 권력을 쫓아다니는 그들을 우리 국민은 무한한 관용을 베풀었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이 주인과 조직을 배반하지 않는 개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뻔뻔해졌다. 국민을 우습게 생각하고 무서운 줄을 모른다. 같은 당에 있다 해도, 동지가 아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자기 정치를 지키기 위해 남을 엎고 득을 보려고 편승하려는 자세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권력을 위해서는 부모, 부자간 갈등, 이간질, 볼모정치를 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아들들(김현철, 김홍걸)을 이용하려 했고, 심지어는 탈당한 정대철 전 의원의 아들 정호준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영입하려는 패권정치를 자행하고 있다.

물론 정호준 의원이 부친의 말을 듣고 고사를 했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정 의원으로는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과거 노무현 탄핵에 앞장섰던 김종인에게 붙을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이해해야 할 것 같다.

정 의원의 선거구가 주민 감소로 성동구 등과 합쳐지게 되면 공천 과정이 쉽지 않게 되기 때문에 비서실장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새로운 인물 영입으로 새 정치를 하겠다고 영입한 인재를 보면 면면이 과거의 사람들이다.

심하게 말해 불빛만 찾아 날아 드는 불나비들뿐이다. 그나마 새로운 인재로 영입된 분들을 보면 아까운 인재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했다 해도 정치적으로는 뜻을 같이 한 입장의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권력을 위해, 의석수 확보를 위해 이용당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치에 대해 준비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정치에 입문하다 보니 무슨 정치를 제대로 하겠는가. 이제까지의 우리 정치사(史)를 보면 언제나 같은 입장에서 당을 지킨 것이 아니라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이익에 따라 이리 붙고, 저리 붙는 소인배들이 잠시 머물다가는 숙소에 불과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국민들 입장에서는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다. 정치를 개판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들이 남 탓만 하고, 정당 당명만 바꾸면 무엇 하겠는가. 호박에 줄 끈다고 해서 수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당은 박 대통령의 입장을 내세우며 자기편과 편 가르기를 하려고 한다. 친박, 비박, 심지어는 진박으로 나눠져 싸운다. 또 야당은 친노, 반노, 등으로 분열되어 공천권을 놓고 집안싸움만 한다. 지금은 과거에 머물러 집착하는 것은 버려야 할 때다.

정치를 잘못해 나라가 이 지경에 빠졌는데도 왜 전직 대통령의 뜻을 계승하려고 하는지, 기가 막힌다. 새로운 정치를 하려면 그분들의 정책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지금 더불어 당의 경우 친노. 반노를 따지며 전직 대통령의 정치 계승을 말하지만 엄밀히 말해 친노도, 반노도 아니다.

이번 영입 자들의 면면을 보면 친문이 분명하다. 새로운 세력이 자생적으로 생긴 것이다. 또 과거 새 정치에 잠시 몸을 담았다가 국민의 당을 창당한 안철수의 경우도 이희호 여사와의 비공개 면담 내용을 녹취한 것도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모두가 새 정치를 내세우면서 뭐가 달라져도 달라져야 하는데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미봉책으로 그때, 그때마다 위기 모면식의 말잔치뿐이다. 권력자 앞에서 완장만 차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이런 몰골로 정치를 하겠다며 국민들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을 위한 새 정치를 하겠다고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국민은 단지 선거 때만 이용하는 소모품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결국 칼자루를 쥔 권력자에게 충성을 하거나 수십억을 조달한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금배지를 달 것이다. 그들이 지금은 여 야로 갈라져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선거운동을 하지만 그렇게 당선된 그들이 국회에 입성하고도 서로의 입장 차이가 달라질 수 있을까.

실제는 그렇게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입장 없는 정치로 권력자에 의한 당론을 따를 것이 분명하다. 이제까지 다른 입장의 정치가 진입할 틈이 없는 후진성 입장의 정치를 해 온 결과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정치인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그들의 정치적 능력, 인품을 검증하기 전 지역, 학연, 연고를 먼저 생각하고 투표를 한 유권자인 국민들이 이렇게 정치판을 개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도 않고 이분법 논리만 주장한다. 또 시대성을 인정하지 않고 편견으로 일관하며 자신의 생각에만 집착되어 있다. 정치이념의 스펙트럼 중 한쪽에만 치우쳐 다른 쪽의 입장은 무조건 거부한다.

법을 위반하면서도 인권 운운하며 질서를 깨고, 막말을 하면서도 표현의 자유라는 입장에서 국가를 혼란스럽게 만들어도 그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우리나라가 되어버렸다. 이런 나라에서 무슨 정당정치의 활성화, 자기 소신과 정책을 가진 정치인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진정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한다면 군사 혁명이라도 나서 국회를 해산하는 길 밖에 대안이 없다. 또한 야당이 새롭게 변하지 않고는 새로운 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몇 달 후 선거를 치러야 하는 국민들 입장은 참으로 암담하기만 하다.

현 선거 체계에서는 내가 투표를 하지 않아도 다수자가 당선된다. 그게 문제다. 이제부터라도 후보자의 진정한 입장을 신중하게 들어보자. 경력과 능력 또한 충분하게 검증을 하자. 그들의 입장이 단지 미사여구에 달콤한 말로 머리로만 하는 것인지,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인지를 판단하자.

자칫, 누구의 계파, 정통성을 내세우는 사람을 뽑는 우(愚)를 범하지는 말자. 무상급식, 무상교육, 복지사회를 선거 구호로 내세웠던 정당들을 이미 경험해 본 국민들이다. 더 이상 그들의 감언이설에 현혹되어 위기의 나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철새 같은 사람, 부정부패 비리가 있는 사람, 국가와 국기를 부인하는 사람, 막말과 폭력을 일삼는 사람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더 이상 정치권력자들에게 우롱을 당하는 국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나라를 망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시인.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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