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야의 종이 울리는 순간 잠시나마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된다. 똑같은 1초 1분인데도 순간적으로 한 해가 바뀐다는 설렘으로 새해에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그러나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무색할 만큼 새해를 마지 한지 한 달도 채 못 되었는데도 새해 첫날 세운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맘때면 주소록에 있는 전화번호를 지우기도 하고 새로 입력을 시키기도 한다.

또 가족이나 친지, 친우들의 생일, 기념일 등을 달력에 적어놓기도 한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 작업이 하나의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한순간에 1년을 보내고 또 맞이한다는 것에 대해 신비함을 느끼기도 한다.

끝과 시작이 만나고, 교차하는 순간이 묘한 기분을 갖게 하는 것이다. 특히 극과 극의 전율, 각기 다른 성격(+ 와 -)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도 하나로 합쳐질 때면 통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한다.

‘시작과 끝’ ‘어둠과 빛’ ‘선(善)과 악(惡)’이 얼핏 보면 대조적이고 서로가 상극인 것 같은데 관점만 달리하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미묘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런 설렘 속에서 새로운 새해를 다짐해보지만 계획이 클수록, 그리고 시도가 새로운 것일수록 실패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작심삼일이 되기도 한다.

엉뚱한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새해를 맞이하면 누구나 한 살을 더 먹게 된다. 한 살 씩 더 나이를 먹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바로 경륜과 지혜다. 뒤늦은 깨달음이나 후회 등이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흔히 자기보다 어린 나이의 사람들에게 ‘네 나이’라면, 하는 말을 곧잘 한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 나이에 알았다면 무엇이라도 할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지나고 보니 깨닫게 되고 후회를 하지만 정작 그 나이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말이 될 수밖에 없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들은 변하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간혹 사람들은 ‘당신 변했군.’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당신 변했어’라는 말은 십중팔구는 나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게 변하듯 사람도 변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

변하는 과정에는 이별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가 영원하지 않다. 따라서 지금 사랑하는 사람도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죽음으로 갈라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남 뒤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수반된다.

‘지금’은 언제까지 있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의 현실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을 하며 잊고 산다. 지금의 내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행복이 영원할 것이라는 확산에 차있다 보니, 교만해지기 쉽다. 또 이웃에 베푸는 것에도 무척 인색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그 시간에 따라 상황도 바뀌고 또 나이를 먹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바라는 만큼 행복이 자신에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인생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얽히고설킨 거미줄처럼 되어있다. 행복만 계속되고, 불행만 계속되는 삶은 없다. 인생은 기쁨과 슬픔, 고난과 환희 속에서 추함과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새로운 삶을 배우며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 해 한 해를 보내면서 경륜이 쌓이고 소중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성숙되어 가면서 성취의 기쁨을 누리고, 이별의 슬픔도 맞이하게 되는 게 우리의 삶이자 인생이다.

언젠가는 이별을 해야 할 우리이기에 함께 하는 시간, 비록 내일 헤어진다 해도 덜 후회할 만큼 베풀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벌써 대한(大寒)이다. 긴 것 같은 날들이지만 뒤돌아보면 짧기만 한 시간들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 시간들을 소중하게 맞이하고 보내야 한다. 이렇게 장황하게 글을 쓰는 것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새해가 되었지만 변하지 않은 우리 정치권의 현실 때문이다. 너무 갑갑하고, 분노마저 치솟는다.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극과 극의 꼭지점에서 조차 서로가 대치하면서 제 밥그릇 찾기에만 급급하다. 모두가 이기려고 하면서도 상대에게는 조금도 져 줄 생각이 없다. 공격 논리가 강해질수록 방어논리도 극으로 대립한다.

당명을 밥 먹듯 바꾸는 야당을 향해 “민생경제와 ‘더불어’ 가는 모습을 보여 달라며 대통령이 안타까운 모습에도 정략에 묻혀 자성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발언을 하는 대통령을 비난하고 있다.

또 국회선진화 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바꾸려는 정부 여당을 향해서는 ‘위법을 저지르려고 한다.’며 “민주주의가 날이 갈수록 후퇴 한다”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국회의사당 안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의사당 밖에서 떠들면서 직무유기를 하는데도 아예 인간 취급을 안 하는 것인지 국민들은 무반응이다. 국회가 살아 움직여야 나라 경제가 회복될 수 있는데 정부의 손발을 다 묶고 놓고, 대통령을 탓하니 그 또한 어이가 없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국가 위기임에도 위기가 아니라며 직권 상정을 거부하는 국회의장이라는 사람의 처세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경제 회복을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마당에 도무지 무슨 꿍꿍이, 속이 있는지 ‘잘못된 법을 고치기 위해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를 수는 없다며 직권 상정을 거부하는 국회의장의 오만한 태도가 안타깝기만 하다.

일부 시민은 국회의장이 옆에 있으면 걷어차고 싶다고 할 정도로 격한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강추위가 계속되어도 언젠가는 따뜻한 봄이 오련만 정치권에는 봄이 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민생 경제 살리고 국민만을 생각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하면서도 상대방이 하는 말은 듣지도 않으려고 한다. 개(犬)처럼 마구 짖어대며, ‘게’처럼 잡아끌어 내리려고만 한다.

이런 개 같지도 못한 행태는 4월 13일 총선까지 치열하게 서로가 물고 뜯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권이 모르는 게 있다. 상대를 헐뜯으며 발목을 잡고 막말을 일삼는 자에게는 국민이 마음을 주지도 않을뿐더러 눈 길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아울러 국민의 마음을 구하려면 극과 극이 하나로 통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한 마디 더 하자면 새해에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워도 그 안에 사랑과 베풂이 배제되었다면 좋은 계획이 아니다.

인생의 참 목적은 행복을 추구하기보다 이 세상을 떠났을 때 남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또 이 세상에 무엇인가 더 좋은 것을 남기고 가는 것이다. 늦었지만 병신년 새해의 계획은 이웃에게 좀 더 베풀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두에게 기억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이 세상 떠날 땐 빈손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말이다.

[시인.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 실용영어학과 특임 교수]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