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비의 집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찾아와 대문을 두드렸다. 선비가 대문을 열자 그 아가씨가 말한다. ‘나는 공덕천 이라고 하는데 당신 집안에 행복한 일과 많은 재물을 가져다주며 행운이 따르는 좋은 일만 가져다주는 사람이라고’ 그 말을 들은 선비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 여인에게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런데 그 여인 뒤로 검은 옷을 입은 아주 험상궂은 여인이 뒤따라 들어오는 게 아닌가. 놀란 선비가 그 여인을 가로막으며 ‘누구냐?’고 묻자 여인이 차가운 미소를 띠며 말한다.
‘나는 흑암녀라고 하는데 당신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나 불행한 일만 가져다주는 사람이다’

그 말을 들은 선비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내쫓으려고 하자 그녀가 또다시 말을 한다. ‘나는 공덕천 언니와 늘 함께 다니는 자매로서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흑암녀의 말을 들은 선비는 두 여인 모두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고 거절을 했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글이다.

이 글에서처럼 행복과 불행은 그림자처럼 늘 함께 붙어 다닌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행복과 불행이 수십 번씩 교차하는 하루의 삶을 살고 있다. 행복감에 취해있다 보면 어느샌가 불행이 찾아오고 또 행복이 다가온다.

그렇게 행·불행이 쉼 없이 번복되면서 기뻐하기도 하고 때론 분노하거나 슬픔에 잠겨있기도 한다. 주변 환경에 따라 마음이 수시로 변한다. 이를 두고 흔히 우리는 ‘인생만사(人生萬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말한다.

변방에 사는 촌로가 좋은 일이 생겨도, 불행한 일이 생겨도 그 어떤 상황에 처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다는 고사(古事)다. 인간이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행복과 불행이 교차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연인이다.

특히 다른 동물과는 달리 집단생활을 하며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본인의 뜻과는 달리 인생의 기복이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없고 또 언제나 불행한 삶만을 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고 흐린 날이 있으면 밝은 날도 있다. 따라서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게 마련이다. 삶이란 그렇다. 우리의 삶이 하루하루가 힘이 든다면 지금 높은 고갯길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편안하고 쉬운 매일매일이 계속된다면 이는 골짜기로 향하는 걸음일 것이다. 걷다 보면 때론 평지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평지를 오래도록 걷는 편한 인생은 없다. 우리 인생길에는 반드시 어두운 밤이 있다.

질병이라는 밤, 이별이라는 밤, 가난이라는 밤, 인간의 숫자만큼이나 죽음의 밤의 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그런 밤을 애써 회피하려 들고 가능한 한 그런 어두운 밤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해 왔다.

그러나 그런 밤이 오지 않으면 반짝 빛나는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별이 뜨지 않는 인생이란 죽은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누구든 밤을 맞이하지 않고서는 별을 바라볼 수가 없다. 그 누구도 밤을 맞이하지 않고서는 새벽을 맞이할 수가 없다.

무지(無知)한 자가 논어를 들먹인다. 논어에 ‘고기 양단(叩基兩端)’에 대한 글이 있다. 이 글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아는 것이 있겠느냐. 나는 아는 것이 없느니라. 다만 비천한 사람이라도 진실하게 내게 무엇인가를 물어오면 나는 그 물음의 양쪽 끝을 두드려주는데 전력을 다할 뿐이다”

공자는 사물과 사건을 해석하고 새로운 발전을 하는데 있어 양쪽 끝을 두드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는 이쪽과 저쪽, 최상과 최하, 중심과 주변 모두를 천천히 관찰하고 연구함으로써 해법을 찾아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회 발전의 동력을 찾아내고 개인이 새롭게 변신할 수 있는 기회 역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기회도 마음을 먹는다 해도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왜 안 되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쉽게 알았다. 답은 ‘만남의 관계’다.

사람은 반드시 상대적 관계를 갖는 존재다. 그래서 사람을 인간(人間)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사람은 그 같은 관계를 통해서 공존하며 성숙되는 것이다. 그런 ‘만남의 관계’를 잘 맺고 유지하는 일은 우리의 삶의 과정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수 있다.

어떤 만남의 관계가 되느냐에 따라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행·불행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요즘 내년 총선을 여야 예비주자들의 공천을 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 전국이 어수선하고 시끄럽다.

시급한 민생정치는 어디로 가고 선거구 확정 문제로 남의 험담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잘못 놀리는 혀가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 순간, 그것도 잠시 한때 권세를 누리다가 은 팔찌를 차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 붉은 벽돌집으로 들어가거나 검찰에 불려 다니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느껴지는 게 있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을 때도 너무 들떠서도 안 되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않고 좋은 때나 나쁠 때나 언제나 태연한 자세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최근 언론매체에 뜨는 의원들의 일그러진 얼굴들이 떠오르면서 입가에 냉소가 스치고 지나간다.

똑똑하고 유능하다고 자처하는 그들, “가짜는 어디에든 있어도 공짜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이 세상에 비밀은 없다는 것을 왜 모르고 있었을까. 물고기가 미끼에 걸리면 목숨까지도 잃는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저렇게 패가망신은 당하지 않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두 가지만 말하고 정리하고자 한다. 하나는 권력과 인기는 왕관과도 같다는 것이다. 쓰기 전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막상 쓰고 나면 머리가 아프다. 그리고 그런 왕관은 결국은 벗어야 하고 자칫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것. 또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권력과 재물, 그리고 명예보다 더 귀한 게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간의 관계는 고슴도치와 같다. 흔히 인간관계를 고슴도치가 모여 사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너무 가까이 붙으면 서로 가시에 찔려 상처가 나고, 너무 떨어져 있으면 춥고 외롭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 찔리지 않을 만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관계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란 너무 멀리 떨어져 외면당하지 않고, 너무 가까워서 상처받지 않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손등과 손바닥처럼 양면으로 붙어있다. 어느 쪽으로 돌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국가 의전 서열 1.2위인 박근혜 대통령과 정의화 국회의장이 정면충돌을 보이며 정국을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을 대변하기 위해서”라며 “테러방지법. 노동법. 선진화 법 등 ‘원샷 법’(기업활력 제고 특별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정의화 국회의장은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누구보다 더 인식하고 있다” 라며 “(직권 상정)안 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 못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또 국회법 85조를 인용하며 지금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가 아니다. 지금의 경제 상황을 그렇게 보고 있지 않다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요지부동이다.

그럼에도 선거구 획정 문제는 의장으로서 직권상정할 뜻을 내비췄다. 식물 국회로 불리는 19대 국회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법안 심의 자체를 거부하며 5개 상임위를 모두 보이콧한 야당이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힘든 한국 경제 앞에 국회가 변변한 입법하나 만든 게 없이 세비만 축내고 선거에만 신경을 쓰며 야당이 법안 심의를 거부하니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사정이 이렇게 긴박해도 청와대가 국회의장에게 직권 상정을 압박하고 비난하는 것 또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의장 역시 비상사태 운운하며 거절만 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이에 앞서 대통령이 직접 야당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여권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긴급 재정 경제 명령’ 검토 설까지 나올 정도다.

지금 한국 경제는 나라 안 밖으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있다. 단기 부양이 아니라 구조 개혁이 절실히 어느 때보다 절실할 때다. 야당도 국민을 생각한다면 사사로운 일에 목숨을 걸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은 국가 안보. 경제 위기의 시대다.

단기 부양이 아닌 구조개혁이 절실한 상황에서 야당의 법안 심의 거부, 자칫 3권 분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다툼의 모습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아프기만 하다. 이런 난국일수록 우리 모두는 힘을 합쳐 극복을 해야 한다. 지금은 여야를 떠나 지혜를 발휘할 때다 안호원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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