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고향 친구들과 선술집에서 술 한 잔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한 쪽에서 오래전 들어보았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모두들 시선을 돌려 소리 나는 쪽을 보았다. 6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어깨를 걸고 불렀다.

이제는 잊힌 추억의 노래로 생각했던 가사가 선명하게 귀를 깊게 파고들었다. “.....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다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2절까지 목이 터지라고 부른다.

어느덧 우리 일행도 따라 부르게 되었는데 성에 차지 않고 알 수 없는 서러움까지 겹치며 울컥해진다. 가슴 한 쪽이 서늘해진다. 70년대 중반, 강의도 포기한 채 선배들에 이끌려 거리로 뛰쳐나갔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마다 우리는 인간 사슬을 만들어 ‘아침이슬’을 목이 터져라 하고 불렀다. 어찌나 서럽게 부르는지 부를 때마다 가슴이 찡해졌다. 그래도 지금처럼 폭력시위는 없었다. 경찰들이 아들. 딸 같은 학생들에게 무참하게 곤봉을 휘두르지도 않았고.

또 아버지 같은 경찰들에게 화염병을 던지지도, 쇠 파이프를 휘두르지도 않았다. 저녁때면 교문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경찰들에게 삶은 국수와 단무지를 갖다 드렸다. 경찰들은 “지도자가 정치를 잘못하다 보니 학업에 전념해야 할 학생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안타깝다”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수시로 시위를 했지만 약속된 가이드라인이 있어, 밀고 나갔다, 밀려들어오고 했다. 무질서 한 것 같았어도 질서가 있었다. 그러던 시위 문화가 어느 때부터인가 전쟁을 방불케 하는 폭력 시위로 변해버렸다.

1, 2학년들은 전위대가 되어 쇠 파이프와 화염병이 등장했다. 심지어는 시위대들이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젊은 전경들을 향해 ‘내가 너의 아버지뻘이다 야 XXX들아’라고 소리치며 아들 같은 전경들에게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폭행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연 이들이 아버지로서의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김민기가 작곡한 ‘아침이슬’은 1970년대 이후 대학가와 노동자 및 시민단체 시위 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애창곡이었다.

가사 내용 때문일까, 한때 박정희. 전두환 정부에서는 방송금지가 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80년에 만들어진 숱한 민중가요의 원조 격이 된 노래가 ‘아침이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다.

몇 년 전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안내원이 북한에서 공공연히 불러지는 남한 노래가 있는데 바로 ‘아침이슬’이라고 귀 띔 한다. 그런 아침이슬이 어느 듯 우리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말로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케케묵은 옛 노래로 취급하면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노래를 잃어버리면서 그 기세등등 하던 민중가요, 민중 문학도 동시에 꼬리를 슬그머니 접었다. 그렇게 ‘아침이슬’은 우리 곁을 떠났고 사람들은 아침이슬을 잃어버렸다. 아니 잊어버렸다. 그런데 지금 그 잊어버렸던 노래를 다시 듣게 된 것이다.

무슨 말을 하다 저 노래를 부르게 되었을까, 신경이 쓰여서 귀를 그쪽으로 기울였다. 전 주(酒)가 있는지 몰라도 이미 취기가 있는 그들은 폭력 시위를 주도하다 조계사로 숨어들어간 민노총 한상균 위원장과 그를 보호하고 있는 조계사 스님들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터트리고 있었다.

말인즉 한 위원장은 폭력을 주도하고는 절(寺刹)로 피신을 한 것은 법치에 대한 조롱이고 능멸이나 다름없다며 아무리 사찰이라 해도 폭력 시위 꾼에게는 무관용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종교시설이라도 파렴치하고 무책임한 선동 꾼은 종교시설에서 보호할 가치도 없다고 단정 지었다. 그런 폭도들의 폭동을 지적해야 할 야당 대표가 그들을 두둔하며 경찰이 과잉 진압을 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야당 대표로서의 할 말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또 새정치 연합 문 대표의 측근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도 성토했다. 더 이상 문 대표는 침묵을 지키며 그들을 보호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열변을 토한다. 특히 ‘을’을 위해 만든 ‘을 위원’ 인 이들(노영민. 신기남. 윤후덕)이 갑 질 노릇을 하며 도덕성을 실추시킨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더구나 더 많은 시민들이 휴식을 취해야 할 광화문 일대를 무법천지로 만들고도 오히려 경찰의 과잉진압을 트집 잡는 것이야말로 적반하장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고 했다. 또 어떻게 된 세상인데 군인이 나라를 지키다 사고를 당해 수술을 하는데 그 비용을 개인이 부담하고, 소방관들이 장비를 자비로 구입해야 하느냐.

그런데도 일부 지자체장들이 엉뚱하게도 청년들에게 한시적으로 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정부와 지자체장을 싸잡아 비난했다. 더구나 민생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시점에서 국회의원들이 흥정을 하면서 늦장 법안을 두고 분통을 터트린다.

또 한마디를 한다. 어떻게 5.16군사 혁명이 쿠데타로, 5.18광주 사태는 아직 진상조사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5.18민주화 운동으로 둔갑한단 말인가. 모두들 분(憤)이 안 풀린 듯 술을 더 시킨다. 무척 갈증을 느끼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누가 뭐라 해도 표현.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어있는 나라다. 정부와 정당은 마땅히 국민의 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그러나 황 총리가 지적했듯 국격(國格)을 떨어트리는 후진적 시위, 다수의 국민들이 불편을 느끼게 하는 표현. 불법집회는 우리 법질서와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특히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하고 국가의 사법 시스템까지 무력화 시키는 불법 행위는 끝까지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조계사에서도 이런 범법자는 더 이상 보호할 필요가 없다.

한때는 천주교로 도피처를 만들었던 범법자들이 지금은 천주교로 가지 못한다. 더 이상 천주교는 도피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계사도 마찬가지다.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종교시설이 더 이상 범법자들의 도피처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흘러간 추억의 노래가 된 ‘아침이슬’이 불법 시위대들로 하여금 시작과 끝을 알리는 노래로 다시는 불러지지 않기를 바란다.

수많은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며 경제 성장을 이룩한 이 나라, 시대적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제 살길에만 급급한 ‘갑 질’의 정치인들을 보면 ‘을 질’인 국민들은 울화가 치밀고 답답하기만 하다.

지금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물이나 공기처럼 공유의 자원이 되면서 소중함을 모른다. 사유물처럼 아끼는 마음조차 없다.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조상들이 목숨 바쳐 쟁취한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킬 것이며 또 경제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라고.

정치인들을 바라보다 참지 못하고 술에 취해 끝내 쉰 목소리로 ‘아침이슬’을 부르는 형국이 될까 우려된다. 그러니 제발이지 그 노래의 뒷부분,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를 부르며 눈물의 술잔을 들고 슬퍼하는 국민들이 늘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열망하는 것과 같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나라에 종군기자로 와있던 영국 타임즈 기자가 남긴 말이다.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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