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예측한 대로 고시되자 야당이 ‘국정화 저지 범국민 총력전 선언’을 하고 의사당을 벗어나 장외투쟁을 할 움직임을 보이면서 정국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지금의 야당은 마치 색안경을 쓰고, 귀를 막고 자기 목소리만 크게 내는 모양새다.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불편하다. 바둑을 둘 때 바둑을 두는 고수보다 옆에서 지켜보며 훈수를 두는 사람들이 바둑이 죽고(死) 사는 것(生)을 더 잘 안다.

이유는 욕심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그러한 것 같다. ‘즉문즉설’은 누가 해결책을 대신해주는 게 아니다. 자신들이 지혜의 눈을 뜨도록 해야 한다. 지혜의 눈을 바로 뜨려면 어느 한 쪽만 보지 말고, 다른 한 쪽도 같이 보아야 한다.

앞만 보지 말고, 뒤도 돌아보고, 위만 보지 말고, 아래도 보면서, 이렇게 여러 곳을 보게 되면 솔로몬의 말처럼 ‘아, 이게 별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에게 눈이 두 개 있는 것은 좌우를 잘 살피고 정확하게 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수행자가 따로 없다. 탐욕으로 인한 괴로움은 결국 나의 무지와 편견으로 오는 것이다. 자신이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부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있을 때는 즐거운 마음이 될 수 있다.

한 신부의 말씀이 생각난다. “혼자 사는 총각이 나이가 63세가 되어도 장가를 못 갔다고 하면 매우 부정적인 사고에서 볼 수밖에 없다. 그런 데 신부(神父)가 63세가 될 때까지 장가를 안 갔다면 수행자로서 잘 한 게 아닌가”

종교인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사고로 보게 되는 것이다. 장점도 있다. 교육비 엄청나게 들어가야 하는 자식도 키울 필요 없고, 얼굴을 대할 때마다 바가지를 긁는 마누라도 없다. 혼자 있으니 매사 홀가분하고 부담이 없다.

그러면서도 성도들과 상담을 많이 하기 때문에 거리낌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개인은 나름대로 그렇게 긍정적인 사고로 살면 되지만 공공(公共)의 제도는 다르다. 어떤 한 사람에게는 만 원을 주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십만 원을 주었다고 치자.

적게 받은 사람이 왜 다른 사람은 많이 주고 나는 적게 주느냐? 고 항의를 할 때 “주는 건 난데 받는 자가 왜 말이 많은 가, 내 맘대로 주는 것이니까 내가 주는 대로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얼마를 주던 내 것을 주니까 내 맘이야” 그러면 안 된다.

지금 새정치 민주 연합이 국정화 문제를 놓고 하는 말이 꼭 그 짝이다.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인간의 심리가 이런 지경에 이르다 보니 베푸는 사람은 아주 똑같이 주지는 못해도 가능한 격차를 줄여줘야 한다.


북한의 대남선전문하고 문맥이 어쩜 그렇게 닮았을까. 야당을 비롯한 국내 일부 세력들이 북한의 주장과 똑같은 주장을 하며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어떤 사물의 앞만 보고 주장하는 그들에게 뒤를 한 번 돌아보도록 하고, 왼쪽만 보고 말하는 이들에게 오른쪽도 한 번 보라고 하고 싶고, 위만 보며 큰소리를 낼 때 아래는 보았느냐고 묻고 싶다.

앞만 보는 게 아니라 뒤도 보고, 위아래도 보며 다 보게 되면 사물의 전체 모습을 보게 되는 통찰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혜라고 말하고 싶다. 자기와 다른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지만 전체 모습을 보면서 부정적으로 본 부분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도 보고, 저것도 보며 다 살피다 보니 사물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는 것이다. 거대한 코끼리를 맹인들이 각기 다른 부분을 만져보고 자신들이 만진 느낌을 갖고 코끼리라고 단정한다면 맞는 말인가.

나는 ‘가정불화로 이혼했으니 결혼은 안 하는 게 좋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바른 사고일까. 한 면에만 빠져 다른 면은 볼 생각도 안 하고 소통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즉문즉설이 이런 관점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어렴풋이 알 수 있는 것은 다툼과 고통은 결국 무지(無智)에서 오는 것이라는 것이다. 탐구와 소통을 통해 문제의 원인을 찾아 머리를 맞대고 협의를 하면 이런 정쟁(政爭)의 싸움에 아까운 시간을 소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언론들이 국정교과서 편찬에 대해 찬반을 하는 본질적 이유를 밝히지 않고 양당이 갑론을박을 하는 것만 보도하다 보니 국민들이 혼란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관련, 국회 연설을 통해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정쟁이 될 수 없고, 또 되어서도 안 된다”라고 분명 못을 박았다. 야당이나 교수 일부가 기를 쓰고 국정화 반대를 하는 이유를 알면 답은 간단하게 나온다.

매년 중. 고교 교과서 값으로 학생들이 부담하는 비용이 줄잡아 400억 원이다. 이중 저작료 명분으로 약 120억 원(30% 기준)이 교과서 집필자인 진보 측 교수와 전교조 손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런 황금 싸라기 같은 이권이 걸린 싸움 때문에 전교조 및 좌파 집필자들이 한국사 국정화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다. 먹이를 놓칠 수 있겠는가, 이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청와대에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아비는 군사 반란, 딸은 역사 반란 태어나지 말아야 할 귀태 집안”이라고 박 대통령을 비난하며 교사이기를 포기한 막말을 서슴지 않고 토해내고 있다.

이도 부족해 어린 학생들까지 선동하여 학생들을 거리로 내 몰고 있다. 한 술 더 떠 국회에 있어야 할 야당 의원들이 또 장외투쟁을 하려고 한다. 이 또한 국회의원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임을 알아야 할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국정화 반대를 하는 연세대 교수 대부분이 박원순 서울시장이 초대 이사장이고 ‘만경대 정신’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가 소속했던 ‘역사문제 연구소’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 연구소는 사학계를 좌경화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연구소로 유명하다.

2대 이사장은 박헌영의 아들 원경 스님이다. 원경은 김일성을 도와 6.25남침을 주도한 박헌영의 사생아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다른 대학교수들도 대부분 이 연구소 출신이 많다. 국정화가 되면 자신들이 집필자로 선정되지 못할 것을 알고 미리 국민들 앞에서 선수를 치며 대통령을 폄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정이냐? 검정이냐?를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교과서 내용이 ‘진실이냐 거짓이냐’를 구별하고 판단하는 게 급선무다. 국민들은 이들의 농간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고(故) 신상옥 감독의 자서전을 보면 김정일이 남한에 자신이 말을 들을 세력이 2만 명에 달한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과거 10년 정부에서는 그 흔한 간첩 잡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겨우 공안 검사들이 간첩으로 잡아넣어도 어찌 된 영문인지 무죄로 풀려났다.

김정일의 말이 생각나면서 섬뜩해진다. 지금도 국정화를 찬성하는 학자들을 은근히 협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 등이 역사에 없다는 것에 대해 이미 초등학교에서 다 배운 것이라는 변명을 하는 저들의 음흉한 계획을 말살시키고 야당 의원들은 이번 총선에서 뜨거운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

우리가 특히 주의할 것은 일부 안보 강사가 반공법 폐지, 미군 철수, 천안함 피폭 조작설을 강조하며 왜곡된 역사교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역사 교과서가 시험과목에 포함되어 다행이지만 이참에 한마디 더 하자면 인성이 상실되어가는 시점에서 윤리 과목도 포함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또한 이번 국정화 교과서 집필진은 이전에 집필했던 교수. 교사는 전원 배제 해야한다. 더는 사상이 불온한 인물에게 집필을 맡겨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북한이 대한민국의 주적이 아니라 양키(미국) 놈들이 우리의 원수 주적(主敵)이라고 말하는 자들에게 집필을 맡겨서는 결코 안 된다. 총선에서 그런 자들을 가려 표로 심판하자.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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