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가까워지면서 교통이 마비되는 등 거리가 분산해지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도 분주하다. 잠시 잊고 있던 그리운 고향의 부모. 친지, 친구들이 있는 고향 길을 떠날 준비를 한다.

이제는 사계절이 있어도 삼한사온(三寒四溫), 낮과 밤의 기후변화,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추석 명절이 될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언제인가부터 우리는 개미처럼 살아가는 인생으로 변한 것 같다.

오직 자신의 먹이만을 준비하기 위해 땅바닥만 보고 땀 흘려 열심히 양식을 모으지만 아쉽게도 이웃에 대한 무관심과 함께 개인주의를 떠나 이기주의자로 전락해버리는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다.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소유했다고 해서 참 만족과 행복을 얻은 것은 결코 아니다. 진정으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 위대한 사람은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오늘을 열심히 살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일 것이다.

헬라어로 인간을 ‘안드로 포스’라고 한다. 이 말을 번역하면 ‘위(上)를 바라 보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위를 바라보며 큰 뜻을 품고 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여유도 없이 바쁘게만 살아왔던 것이다.

땅바닥만 쳐다보며 살다 보니 다른 것이 보이지도 않고 또 시야가 좁다 보니 생각도 없다. 보이는 것만 쫓다 보니 마음에 여유도, 다른 것을 생각할 기회조차 없다. 그런 삭막한 삶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이렇게 개미처럼 분주하게 사는 것도 어찌 보면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대부분 인생의 기준은 ‘행복 한 삶’이다.

지난 일을 되돌아보았을 때 행복했었는가? 아닌가? 혹은 지금 내가 행복한 것인가? 아님 불행한 것인가?라는 잣대는 인생의 목표 수정에 많은 영향을 준다.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 각자가 정한 행복의 가치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지만, 삶의 목적이 ‘행복’에 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에 따르면 진정한 행복은 개인의 감정을 파악하고 개발하여 일, 사랑, 자녀 양육, 여가 활동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활용하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친절, 독창성, 유머 감각, 낙관주의, 호기심, 열정, 너그러움 등을 삶에 적용시키면 긍정적인 태도로 보다 나은 삶을 살수 있다고 주장했다. 행복의 조건을 외적인 환경에서 찾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좋지 못한 환경은 우리를 불편하게 할 수 있으나, 좋은 외적 환경도 우리에게 완전한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줄 수는 없다. 진정한 내적 만족과 행복은 바로 내적인 보람과 의미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정작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어렵고 좋지 못한 외적인 환경이나 사건들이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있다. 간디는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라고 역설한다.

중국 속담에 ‘한 시간 동안 행복해지고 싶으면 낮잠을 자라. 하루 동안 행복해지고 싶으면 낚시를 가라, 일 년 동안 행복해지고 싶으면 유산을 물려받아라. 평생을 행복해지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도우라’라고 했다.

누구든지 이 세상을 떠날 땐 흔히 말하는 대로 빈손으로 간다. 돈도 명예도 사랑하는 사람도 다 놓고 간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베푼 것은 그렇지 않다. 움켜쥐고 있을 땐 모두를 놓고 떠나지만 나눔이 있을 땐 다르다.

다른 이웃을 위해 나눈 것은 곧 자신이 가져가는 몫이다. 이는 받은 사람이 베푼 사람을 항상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철학자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5가지 조건을 보면 첫째, 먹고 입고 살기엔 조금은 부족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엔 다소 부족한 외모. 셋째,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절반 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넷째, 남과 겨루었을 때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할 때 듣는 사람의 절반 정도만 박수를 보내는 정도의 말솜씨. 이 다섯 가지의 공통점을 보면 바로 부족함이다.

약간의 부족함은 적절한 긴장과 노력을 가져올 수 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 어쩌면 행복이란 내가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더 얻어 가는 데서 느끼는 ‘희열의 채움’ 이 아니라 내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잘 다듬어 가는 행복의 다스림에 있을 수도 있다.

행복이란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즐기는 것이다. 연내 행사로 매년 이 맘 때면 몇몇 안 되는 주위에 있는 어려운 분들을 찾아 쌀과 생필품을 나눠드리고 함께 오찬을 나누며 담소의 시간을 갖는다.

물론 필자의 삶도 그리 여유롭지는 못하다. 예산도 많이 들어간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으로 이웃에 베풀 수 있다는 즐거움은 여가 활동, 봉사를 할 수 있게 한 건강과 열정으로 이어지며 감사의 마음이 되고 또 자신이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간디가 말한 ‘감사의 분량이 곧 행복의 분량’이라고 말 한 것처럼 감사의 마음이 충만한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제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추석이 다가온다.

대부분이 고향을 찾아 길을 떠나겠지만 우리 주위에는 경기 불황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웃, 고향을 갈 수 없는 처지의 있는 이웃,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실향민, 탈북자, 슬픔과 아픔을 간직하고 고통이 더욱 가중되고 있는 이웃들, 추석 때만이라도 주위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자신의 소유를 나눠주는 아름다운 마음을, 세상의 빛이 되는 그런 분들이 많이 나와 쓸쓸함을 덜어드리고 즐거움을 나누며 함께 행복을 누리는 그런 밝고 맑은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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