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성완종(前 경남기업 회장)이 살아있는 이완구 총리를 낙마시키고 핵심 잠룡(潛龍)정치인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바라보면서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이 ‘죽은 공명이 산 사미중달을 쫓았다’(死孔明 走生仲達)는 삼국지의 고사 성어였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검찰 수사 중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점도 석연치 않거니와 죽음을 택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현 정권 실세 8명의 실명과 금액이 적힌 메모를 남겼을까 하는 배경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갖고 있다.

‘돈 준 사람은 있는데, 돈을 받은 사람은 없다.’ 누군가는 거짓을, 누군가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돈을 줬다는 사람이 죽었으니 제대로 수사가 이루어질까 하는 국민적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과 2012년 대선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정권 실세들이다. 결과에 따라선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리더십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또 최근에 발견된 인명록에 특정 정치인들을 비롯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정운찬 전 총리 등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당사자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 처럼 많은 산(生)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성 전 회장은 한 차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여야를 넘나들며 정치권에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기업인 출신 정치인이다.

정권의 속성과 정치권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한마디로 비룡재천(飛龍在天 용이 하늘을 난다)이다. ‘대인’을 만나고 하는 일마다 번창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학력에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 성공한 기업인이다.

그런 그가 기업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인으로 변신하면서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그의 ‘비룡재천’은 여기서 막을 내려야만 했다. 한편으로는 서산장학회를 만들어 20년 넘게 300억 원에 달하는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소년 선도 명분으로 기부한 1000만원이 문제가 되어 당선 된 지 2년 후 의원직을 상실한 바 있다. 그는 그 때부터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경남기업이 워크아웃에서 벗어나고 채권은행들로부터 지원을 받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성 전회장이 당시 정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경남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간 부실기업으로 낙인이 찍혔지만 금융계에서 그의 부름에 냉큼 달려와 돈을 내놓았던 권력에 맛을 알기 때문이다. 정치권과의 줄 대기에는 돈의 위력이 크다는 것도 알았다.

과거 정권에서 두 번이나 유죄가 확정되었지만 두 번 모두 특별사면을 받은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런 권력 줄대기에 돈을 주는 것을 ‘의리’ 라 생각했던 것 같다. 특히 기업인들 사이에는 ‘정치헌금 후에야 기업흥망이 결정 된다’ 는 믿음이 강하다. 망한 기업의 사람들에 말을 들어보면 모두 “돈을 안 갖다 주거나, 돈을 주는 타이밍을 놓쳐서” 라는 말을 한다.

오래 전 전두환 비자금 사건 당시 재판부가 전두환에게 “왜 기업에서 돈을 받았는가?” 라고 묻자 전두환은 “돈을 받지 않으면 기업이 불안해 투자를 못 한다 기업인들은 그렇게 돈을 주면서 정치 안정에 기여한다는 보람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고 말했다. 돈을 준 기업인들은 그것을 ‘관행’ 이라고 말한다.

한 기업인은 “기업인의 특징은 이익이 된다면 지옥이라도 가고 악마하고도 흥정을 한다. 정권에 돈을 주면 이익이 되고, 안 주면 망할 수 있으니 정치헌금을 투자로 생각 한다.” 고 말한다. ‘정치헌금 = 투자 기업’ 이 논리는 우리나라의 불가피한 기업경영 현상을 설명하는데 충분하다.

무리한 경영으로 회사가 어려워진 게 분명해 보이는데도 ‘정권에 대한 성의 부족’ 에서 그 실패의 원인을 찾으려는 기업들이 대다수다. 고 정주영 현대회장이 기를 쓰고 대선에 출마하고 많은 기업인들이 공천을 받기위에 목을 매는 이유를 알만도 하다.

정치인 콧바람 하나에 기업이 망하고 흥하는데 어찌 정치에 미련이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런 의리가 깨지면서 배신감에 치를 떨며 목숨까지도 내던져야 했던 자수성가 기업인의 말로(末路)를 지켜보는 마음이 씁쓸하다.

한편으로는 뇌사(賂謝)를 ‘대가성 없는 후원’ 으로 생각하고 긴급구원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한 특권층의 강심장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하다. 검찰에서 수사가 시작되었기는 하지만 과연 이런 정치권과의 부패의 연결고리가 끊어질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런 슬픈 현실이지만, 언제든지 비슷한 후원(?)은 지속될 것이고, 성의껏 돕되 여의치 않으면 안면몰수하며 선을 그을 것이다. 일상에서 예상 가능한 일이기에 그 마력에 빠진 성 전 회장도 스스로 정치권의 갑(甲)이 되고자 그처럼 정치권과의 고리를 엮기위해 무던히 애를 쓴 것이 아닌가. 그 역시 보통사람들은 감히 생각지도 못할 특권을 누린 사람이다.

박근혜 정부가 ‘부패와 전쟁’을 선포하고 해외자원개발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성 전 회장이 사기,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 될 처지에 이르자 ‘의리’를 베푼 권력자(고인 생각)들에게 간절한 도움을 청했지만 문전박대를 받으면서 배신감을 느끼고 극단의 자살을 택했다. 참으로 이기적이고 무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성 전 회장은 자신의 실패이유를 초지일관 외부 탓으로 돌렸다. 죽기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45분짜리 육성 녹취록을 보면 이완구 총리를 겨냥, 청와대와 손잡고 반기문 총장과 가까운 자신을 정치적으로 매장하려한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모두를 죽음으로 끌어드리려고 했다. 왜 자기 기업만 문제 삼느냐고 분노했다. 그의 생각은 잘못 됐다.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고 건설자영업자로서 본업에 충실했어도, 그 사업에 투자를 했어도 경남기업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었을까. 아무리 건설업이라지만 어려울 때마다 정치적 의리로 인맥을 이용하기보다 비즈니스 논리로 풀었더라면 이렇게 불행한 사태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150억 원이 넘는 회사 돈을 정치권 등 인맥 쌓기에 뿌리지 않고 내실을 기했어도 망했을까. 성 전 회장은 그동안 지역사회 발전 등 장학 사업을 해 온 독지가지만 결코 착한 사람은 아니다. 오직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며 인맥에만 의존하는 자기폐쇄형의 성격소유자다.

기업가 정신에서 충실하기보다 회사 돈을 빼돌려 정치자금으로 쏟아 붓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며 무임승차를 하려고 기회만 노렸던 기회주의자인지도 모른다. 결국 지나친 과욕으로 스스로 불행을 자초 하며 가족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어느 정권이든 정경(政經) 분리를 외치지 않은 정권은 없을 정도다. 그러나 달라진 정권은 없다. 도대체 기업인들이 언제까지나 경영보다는 정치에 관심을 갖고 줄서기를 하며 인맥만을 활용 할 것인지. 아무튼 불행한 삶을 마감한 성 전 회장의 명복을 빈다.

누가 뭐라 해도 성 사장 역시 21세기 대한민국의 낡은 정치의 희생자임이 분명하고 제 2, 제 3의 성완종이 또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대형 스캔들이 터질 때 마다 수많은 살생부가 관행적으로 떠돌아 다니며 유언비어가 난무 했지만 실체가 드러나 처벌을 받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감찰 수사에 혼선만 주었을 뿐이다. 말 대로 시간만 흐르면 잊혀졌다. 일단 수사팀이 정해졌다. 수사팀은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고 외압에도 흔들리지 말아야한다. 일단 리스트에 올라있는 8명에 대한 철저 수사를 촉구한다.

아울러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 인 한명숙 ‘9억 수뢰’ 사건도 빠른 시일 내 판결하되 성 전 회장이 노 정권시절 두 번이나 특별사면을 받은 사실도 철저히 수사해 줄 것을 거듭 촉구한다.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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