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말은 대체로 인간의 부패성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말들을 남발하며 살아가는지 모른다.

습관적으로 거짓된 말, 위선적인 말, 아첨하는 말로부터 시작해 자신을 높이고 자랑하는 말까지 마구 쏟아내고, 들으며 짧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 세상에는 ‘말’(言語)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말’ 때문에 불행을 자초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오죽하면 세치 혀를 조심하라는 옛 속담도 있지 않은가.

우리는 흔히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무심코 한 말이 불씨가 되어 서로 간에 상처를 입게 되며 철천지원수가 되기도 한다. 또 때로는 더 없는 귀한 친구가 되기도 하는 것을 주위에서 쉽게 접하기도 한다.

말은 약(藥) 같아서 적당히 달여 쓰지 않으면 독(毒)이 될 수도 있다. 모로코 속담에 ‘말이 주는 상처는 검(劍)이 주는 상처보다 깊다.’ 라는 말이 있다. 결국 말을 할 때 신중함을 보이는 사람은 남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준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무심코 내 뱉은 말로 인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주고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필요한 때에는 적절한 말을 하지 못하고 침묵(방관)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내 뱉은 말에 대해 당위성을 위해서라도 꼭 자신이 했다기보다는 ‘남들이 다 그러는데’ ‘남들이 그러더라’ 란 표현을 쓰며 다수의 생각임을 은근히 강조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같은 말을 듣고 사실 확인 없이 한 사람의 인격을 놓고 마녀 사냥 식으로 일방적인 판단을 하며 덩달아 들떠서 동조하는 주위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자기 편견에서 책임 없이 한 말과 동조로 인해 정작 심적 고통을 겪는 상대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언어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다. 오래 전 전철에서 본 광고 문구가 생각난다. ‘아, 쉽다’ 와 ‘아쉽다.’ 라는 문구다. 똑같은 세 글자이지만 띄어 쓰고, 붙여 쓰면서 느낌에 차이는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또 일선기자로 있을 때 한 여성단체에서 벌어진 사건이 하나 있었다. 회의 도중 한 임원이 집행부에서 자기에게 ‘저런 사람’ 이라는 표현을 썼다며 사과를 요구 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저런 분을’ 이라고 했는데 중간에서 전하는 사람이 잘 못 전달한 것으로 밝혀져 냉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남의 말만 듣고 흥분하는 바람에 망신을 당한 것이다.

이 경우도 앞뒤 말을 빼고 ‘저런 분’ 을 ‘저런 사람’ 으로 둔갑시켜 전달하면서 듣는 사람의 감정을 악화시키면서 갈등을 부추긴 것이다. 듣는 사람으로서는 불쾌할 수도 있지만 오해의 감정까지도 불러올 소지가 충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때도 공개적으로 털어 놓았기에 망정이지 자칫 속으로만 나쁜 감정을 갖고 있었다면 집행부를 좋지 않게 생각 할 수도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필자 역시 남들과의 관계에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안 해도 좋을 말을 하면서 곧잘 후회를 할 때가 많다.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날마다 체험하고 느끼면서 충고도 받기도 하지만 쉽게 바꾸지를 못한다.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정도로 위력이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좋은 말과 만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나 자신을 되돌아봐도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자신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중학교 3학년 때로 기억된다. 아버지는 오남매(첫째와 막내는 남자, 나는 첫째 장남이다)와 종종 식사를 하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당시 교사 생활을 끝내고 사업을 하시다 그마저 실패하고 집에서 소일하시던 아버지는 자신이 걸어온 인생이야기와 그림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아버지는 여러 인간관계를 말씀하시는 가운데 ‘이외지리(理外之理)라는 말을 써서 이야기를 곧잘 하셨다.

이 말에 뜻은 ’세상에는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손해라고 여겨지는 일이 많지만 오히려 그것들이 자신에게 큰 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니 손해를 너무 두려워 말라‘ 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인생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말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자주 불평을 하실 만큼 아버지는 주위사람들에게 자상하셨고 늘 좋은 말만 하시며 그들을 이해하려고 했다.

또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역경을 견뎌낸 경험이 인생에 큰 밑거름이 될 수 있었다고 말씀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밥상머리에서 들려주시던 아버지의 여러 말씀들이 내게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그 영향을 받은 탓일까, 지금도 나는 가능한 한 남에게 좋은 말만 들려주려고 노력하지만 힘이 든다.

누구든 인간이기에 실수를 범 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활한 인간은 실수를 번복하는 자신의 행위에는 관용을 베풀면서도 상대방, 특히 약자와 소외된 자에게는 눈을 부라리며 정죄(定罪)를 하려고 한다.

인간이란 드러남과 속내가 갈등하는 양면성의 문화속에 자신을 적절히 변화시키며 살아가는 정치적 동물이다. 아무 생각 없이 연못에 던진 돌이라 해도 그 돌을 맞는 연못 속 개구리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말이란 것도 그렇다고 생각된다. 무심코 내 뱉은 말이 시퍼런 칼날이 되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때론 자신을 죽이는 무서운 흉기도 될 수도 있다.

“궁지에 몰릴 때 이 연장의 뿌리부터 舌舌舌 오그라들고 세상 살 맛 잃을 때 이 연장 바닥이 까끌까끌해지고 병에서 회복될 때 가장 먼저 이 끝으로 신호가 오는 예민한 이 연장,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사마천은 이것 함부로 놀려서 궁형의 치욕을, 한비자는 민첩하게 사용 못한 죄로 사약 받고 죽었다는데 잘못 사용하면 남이 아니라 내게 먼저 화근이 되는 가장 비싸면서도, 가장 싼 천년만년 녹슬지 않는 붉은 근육질의 저!” 김나영 시 ’연장론‘ 에 나오는 글이다.

비록 세치밖에 안되지만 이처럼 거대한 힘을 가진 것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사람을 살렸다, 죽였다 하기도 하는 혀(舌). 그냥 놔 둘 수 없어 근질근질한 마음에 마구 쓰다 보면 그 설화(舌禍)가 눈덩이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

아무튼 무뚝뚝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언제나 조심해야 할 것이 혀(舌)다. 항상 말을 하기 전 침을 먼저 삼키고 하면 화를 면 할 것이다. “의인의 마음은 대답 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는 성경말씀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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