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그러나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인간의 사회성을 강조 하는 뜻 깊은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되 관계적 존재로 지으셨으며, 선한 양심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의 도덕적 존재로, 다른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로 지으셨다.

사회란 사람이 모여 이룬 집단이다. 최초의 사회, 작은 사회는 ‘가정’(家庭)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의 연(緣)을 맺고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낳으면 가족이 형성된다. 작은 사회 공동 조직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가정이 건강하면 사회도 건강해지고, 가정이 병들면 사회도 자연히 병들게 된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 사람은 동물에게는 없는 지혜가 있고, 도덕성을 생각할 수 있기에 각종 죄를 범하며 마음이 불안하고 두렵다.

사회성이 있기에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돌보고 나눔으로 베푸는 것이다. 지엽적인 말일 수도 있겠지만 가족은 서로를 돌보아야 한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녀를, 자녀는 부모를, 형제자매가 서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작은 사회인 가정이 잘 되면, 사회도 더불어 사는 건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사회심리학자 비코는 꿀벌 같은 사람이 바람직한 사회인이라고 말한다. 꿀벌은 이 꽃, 저 꽃으로 날아다니면서 자기가 원하는 꿀을 얻는 대가로 꽃을 교배시켜 좋은 열매를 맺게 해주듯, 서로를 돕고 나눔의 삶이 건강한 사회인이라는 것이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서로간의 관계가 좋으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나타낸다.

유대인은 ‘하나 더 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라 십일’ 이라고 가르친다. 너(You)와 내가(Me)서로(We)힘을 합하면 새로운 역사까지도 창조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인간의 사회성을 병들고 타락하게 만드는 것은 개인주의다. 그런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전락하면서 살벌한 폭력사회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홀로 남은 이기주의는 급기야 열등감, 소외감, 불안감에 사로 잡혀 자존감까지 상실하면서 패배감과 절망의 늪에서 허덕이다 마침내 자살이라는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으며 영원한 형벌을 스스로 선택하는 불행을 자초한다.

우리 사람들은 흔히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필요 없는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사람’ ‘꼭 필요한 사람’ 이다. 그렇다면 기왕지사 이 조직사회에서 자신이 존재한다면 어떤 부류의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지는 알 것이다.

사회성이 강한 사람이 행복하고 또한 성공률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나 자신이 존귀한 자요.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 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인식시키고 또 실천에 옮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람이 이기적으로 되는 것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을 비우면 원수까지라도 용서하며 벗으로 대하게 되고, 또 한량없는 마음으로 감싸며 품어주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떠날 때는 모두를 남겨놓고 간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세상 살 때 입었던 옷에는 주머니가 많이 달려있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입는 수의(壽衣)에는 주머니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왜 주머니가 달려있지 않은지 그 의미를 알아야 한다.

누구든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에서 언젠가, 어느 시점에 가면 인생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는 시간이 온다. 그 때를 생각하고 욕망의 쇠사슬을 끊어야 한다. 모든 존재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안에 있는 ‘나’(自我)라는 존재는 한시적일 뿐이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그 무엇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이것이 무아(無我)이다. 그러나 그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불리지는 명칭이 달라질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다르게 불리지만 틀린 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자아’ 인 것이다.

한 남자가 아들, 아버지, 남편, 고객, 승객, 등으로 불리여지지만 분명 ‘나’ 라는 존재는 분명 있다. 실체는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더불어 사는 우리는 항상 남의 덕에 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농사를 짓는 농부가 있어 밥을 먹을 수 있고, 옷을 만드는 재단사가 있어 옷을 입을 수 있고, 운전기사가 있어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다는 것에 감사 할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나는 당신을 위해 존재 합니다. 내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라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바로 더불어 사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에게 섬김을 받으려 하기보다는 섬기는 자세로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 모두 더불어 사는 사람임을 인정하자.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이 되자. 언제나 함께 할 수 없는 우리이기에, 오늘도 생명의 축복 주심으로 아름답고 참 좋은 이웃이 있는 세상을 살며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감사하는 마음이 되자.

그런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멀리서 찾으려고 하지도 말자. 행복은 언제나 내 마음 안에 있다.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하며 더불어 산다면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고요히 흐르는 강물처럼 늘 가슴 한 구석에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설레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분명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사랑을 해도 부족한 시간들, 우리 미움도, 아픔도 모두 지워버려야 한다. 모두가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우리이기에 아름다운 마음의 꽃을 피워 모든 이들을 사랑하며 더불어 사는 삶을 살자.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단 한 사람에게라도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것, 그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언젠가 남은 사람들로부터 ‘진정, 그는 우리에게 필요했던 사람’ 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죽음을 애석해하는 사람이 되자.

몇몇 개척교회 목사들에게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면 대부분의 목사들이 “목사님 형편을 잘 아는데 한 번도 아니고....고맙기는 하지만 염치가 없어서 못 가겠어요” 라고 말을 하며 거절한다. 오히려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더 이상은 청하지 않지만 그 분들에게 향한 나눔의 마음은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그렇게 할 수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나눌 수 있고 더불어 살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어 늘 행복한 마음이 된다. ‘돈은 똥이다 쌓아 놓을수록 악취를 풍기지만, 돈을 뿌리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거름이 된다.’

[시인. 칼럼니스트. 前 국민대학교평교원 교수]

※ 이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메디팜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