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파탄에 무상을 외치던 여야 정치권이 ‘무상 프레임’의 수렁에 깊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누리과정(3~5세) 예산편성 문제로 불거진 논란이 엉뚱하게도 무상 논란으로 확산되는 모양이 되어버렸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전격 발표한 ‘신혼부부 주택 공급’ 정책이 발단이 되었다.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이건 또 뭐야?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을 정도로 황당한 기분이다. “신혼부부들에게 집을 드릴 테니 최소한 자녀 세분은 꼭 출산하십시오.” 한 야당의원의 말이다.

무상급식, 무상보육에 급기야는 ‘신혼부부 집 한 채까지?’ 지난 17대 대선 때 대통령후보로 나와 신혼부부에게 1억 원씩 주겠다고 공약을 해서 세인에 비웃음을 산 허경영이란 사람이 생각난다. 그 당시를 연상해서인지 인터넷에서는 이런 말이 돌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마침내 허경영을 뛰어 넘는구나.” 이런 발표에 앞서 보건복지부 고위 공무원이 ‘싱글세’를 매기겠다고 해서 독신자들의 속을 온통 뒤집어 놓더니 여론이 들끓자 황급히 농담이었다며 꼬리를 내렸다.

불난 집에 부채질 하듯 새정치민주연합이 ‘신혼부부 주택 공급’을 들고 나온 것이다. 공짜가 아니란다. 임대주택을 왕창 지어서 저리로 융자를 해주자는 것이니 무상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저리’로 빌려주되 돈은 자신들이 내는 거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싼 값으로 빌려주는 기존 임대주택 정책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집을 드립니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다소의 임대료를 받는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상 ‘공짜 집’ 구상과 다름없다.

야당은 확실히 머리는 잘 돌아가는 것 같다. 지난 2012년 대선 때도 내놓았던 3무1반(반 값 등록금, 무상의료, 무상보육, 무상급식)공약과 지난 4월 지방보궐선거 때의 무상버스 공약에 ‘사자 방’ ‘부자 감세’ 등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공약을 마구 쏟아 내더니 급기야는 공짜 시리즈 3탄인 ‘신혼부부 임대주택’ 을 내놓았다. 그러나 언제나 그 자극적이고 국민을 놀라게 하는 회전 능력 때문에 외면을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만 여전히 그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난 대선 때 여야가 경쟁적으로 쏟아냈던 무상급식과 무상 보육 공약의 후유증으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재정이 뒷감당을 할 수 없게 되자 지방 곳곳에서 복지디폴트 선언이 나오고, 수혜층간의 이해가 엇갈리면서 정당은 물론 계층, 세대 간 갈등이 수면에 떠오르면서 민심 마저 흉흉해지고 있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복지재정이 파산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소득에 상관 없이 모든 신혼부부에게 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는 기가 찬 정책을 발표한 새정치민주연합이 과연 집단지성이 작동하는 대한민국 정당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동안 무책임한 복지공약(空約)으로 인한 국민들의 혼란과 우려를 초래한 데 대한 사과는 커녕 획기적인 발상으로 새로운 무상 정책을 들고 나오는 것은 인기영합주의의 전형이라고 감히 말하고자 한다. 결국 제1 야당을 자처하는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이런 무모하고 황당한 정책을 걸러낼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인가?

처음 법안을 발의한 새정치연합의 홍종학 의원은 주택기금이 보유하고 있는 100조원의 재원과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하고 정부가 이자를 보전해주면 된다고 주장한다. 홍의원의 구상은 도심의 기존 주택을 매입해 개조하거나 중소도시에 ‘신혼부부만을 위한 마을’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홍의원이 말하는 주택기금은 저소득 무주택자들의 주거안정에 쓰도록 용도가 정해져 있어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홍의원이 이 같은 사실을 몰랐다면 무능ㆍ무지한 것이고, 알면서도 그런 주장을 한 것이라면 국민을 현혹시키고 우롱한 것이다. 이처럼 황당한 정책이 특정 계파에 의해 주도되는 것도 석연치 않다. 비대위 위원장인 문희상 의원은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 정책은 교육ㆍ보육과 함께 저 출산을 극복하자는 서민 주거정책으로 무상이 아닌 임대주택을 늘리자는 것인데 새누리당이 공짜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매도하고 있다”고 반박을 한다.

박지원 의원도 마찬가지다. “주택기금 104조원의 일부를 활용해 임대아파트를 짓고 신혼부부에게 싼 값으로 임대해주자는 정책이 왜 공짜고 무상이냐?”며 강하게 비난한다. 또 대선후보였다 낙선한 문재인 의원 역시 “공짜 집 정책인 것처럼 왜곡하는 건 악의적인 흑색선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당 내부에서도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상 급식과 무상 보육문제가 쟁점이 된 마당에 성급한 정책을 발표해 무상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특히 일부 당직자는 임대주택을 대폭 확대하는 정책에 ‘집 한 채’ 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바람에 오히려 ‘공짜 복지’ 논란을 초래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한 당직자도 “우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신혼부부들에게 집을 싸게 임대해주겠다는 취지에서 발표한 정책인데 그 명칭 때문에 ‘무상급식’ ‘무상보육’에 이어 집도 공짜로 준다는 거냐는 새누리당의 프레이에 걸려 버렸다”고 한탄했다. 또 한 번 국민들이 속는 셈치고 믿어 볼까 해도 결국 문제는 재정이다. 돈이 없다는 것이다. 돈만 있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그런 점에서 야당이 눈 똑바로 뜨고, 두 귀를 세워 세상을 제대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취지는 좋았어도 현실성 측면에서는 일부에서 지적하듯 보완할 허점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기존 주택을 개량한 임대주택들은 전국에 어림잡아 5~6만 세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신혼부부보다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정책이 먼저 마련되었어야 했다고 지적을 하기도 한다.

실례로 김현숙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기초생활수급권자 가운데 영구임대주택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인원이 4만7천 가구에 달하고 평균 대기기간도 2년 가까이 된다.”며 “신혼부부뿐만 아니라 고령자와 차상위계층의 주택문제도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에 정책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도 “임대주택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임대주택을 공급 할 때 신혼부부가 우선 고려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사실 보편적인 무상복지제도의 파국은 도입당시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별도의 재원마련 방안을 확실히 만들지도 않고 거액의 돈이 자동적으로 들어가는 무상급식과 무상교육제도를 단지 표만 얻기 위해 공약으로 내세우고 재정도 없이 마구잡이로 사용하다보니 바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도입초기에는 그럭저럭 예산을 돌려쓰기도 하고 전체 세수 실적도 다소 여유가 있어 감당을 했지만 점차 세수부족 현상이 지난해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항목 바꾸며 돌려막기로는 더 이상 무상복지제도를 유지 없을 정도까지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여야가 상대방을 탓하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 하지 말고 무상복지가 사실상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제도 철패를 포함한 전면적인 개편을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야 마땅하다. 사실 그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청와대를 비롯해 여야, 그리고 각 교육자치단체장들까지 모두가 다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선거 때마다 경쟁적으로 대책 없는 무상복지 공약을 내놓고 국민을 우롱한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민들 상당수가 무상복지 공약의 허망한 결과를 모두 지켜보면서 공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기초연금을 재원부담 때문에 보편복지에서 선별복지로 바꾸면서 사과를 했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국민들도 무상복지의 페단을 목격한 만큼 대책 없고 재정도 확보되지 않은 정책, ‘공짜 복지’ 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발표한 ‘신혼부부 임대주택 제공’은 다가올 당권 경쟁을 의식해 지지층 결집을 노린 정치적 제스처로 의심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녕 새정치민주 연합이 집권을 꿈꾸고 있다면 이런 이성적, 무분별한 공짜 정책은 스스로 철회하되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당이 되기 위해서는 무상포퓰리즘을 깊이 반성하고 가장 합리적인 해법을 고민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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