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명의 승객이 숨지거나 실종된 ‘세월호’ 침몰사고는 처음부터 대형참사의 모든 요건을 갖춘 예고된 ‘인재(人災)’의 결정판이다. 허술한 여객선 관련법 및 당국의 선령제한 완화, 이를 십분 활용해 영업을 한 여객선사, 계약직 선장 등의 무책임한 직업윤리의식, 안일한 정부의 재난관리시스템 등이 한데 어우러져 저질러진 대형사고다.

이 같은 ‘세월호’ 침몰사고로 온 나라가 충격과 분노, 허탈감에 빠져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대형사고가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기성세대의 과욕으로 꽃다운 어린 생명들이 속절없이 사그라지는 광경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면서 나라 전체가 집단적인 트라우마에 빠진 것 같은 침통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정치일정은 물론 각종 연예, 오락행사가 중단되거나 취소되었고 일반 국민들도 망연자실한 가운데 유흥가 여가활동을 자제하는 입장이다. 그 바람에 경제활동도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기업들까지 신제품 출시와 제품 홍보를 미루고, 소비자들은 아예 지갑을 닫을 정도가 되었다. 백화점이 온통 텅텅 비어 고객의 발길이 끊어질 만큼 충격이 크다.

나라 전체가 생존자 구조소식을 염원하면서도 점차 늘어나는 희생자 수에 침통한 분위기다. 심지어는 봄철 행사를 기획한 대다수 기업까지도 예정된 일정을 축소하거나 취소하는 등 국가적 재난 상황에 대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떤 사람이든 죽음이 슬프지만 이번에 목숨을 잃은 대부분의 희생자가 청소년이라는 점에서 그 슬픔은 배가 되는 것 같다.

더구나 자식을 갖고 있는 부모들의 심정에서 그 충격과 슬픔이 더하다. 언제나 그렇지만 꼭 이 같은 대형사고가 터질 때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책’을 마련하는 등 관련자들의 책임을 따지고 그에 따라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늘 뒷북을 친다. 많은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살면서 부주의로 인한 크고 작은 사고로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광경을 목격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비상구가 막혀서 탈출이 불가능했던 지하 술집, 화재부터 허술하게 지은 건축물 붕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참사를 보았다.

사전에 안전점검을 철저히 했으면 일어나지 않을 사고인데도 불구하고 대개의 경우 사고예방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고 또 관련법을 엄격히 적용해 지도감독을 할 관할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예고된 인재가 발생하고 있다. 부주의와 태만으로 대형사고가 발생하고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되어도 우리는 그 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 하는 식으로 안전의식과 사고예방에 무관심해진다.

“나는…”이란 생각으로 ‘만약’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일례로 노란색 유치원 버스를 보자. 대부분의 차령이 오래된 차다. 그리고 정원보다 더 태우면서도 안전벨트를 착용하지도 않는다. ‘만약’의 대형사고를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러나 이 또한 사고예방을 최우선 과제로 둔다면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의 삶 속에서 ‘만약’이란 것을 잊어선 안된다.

사고가 난 후 마음 아파하고 분노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시민의식을 갖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단호한 지적이 필요하다. 물론 모든 사고에 대해 다 예방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시민으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안전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

안전불감증이나 무관심과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발생한 후 책임자 문책, 사후대책 마련에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기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지도감독을 철저히 하는 감독기관이 되었으면 한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 조직개편을 했는데 가장 주목받은 부처가 ‘안전행정부’였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를 강조하면서 ‘행정안전부’가 ‘안전’을 우선으로 순서만 바꾼 것이다.

“안전만큼은 확실히 하겠다”며 개편한 ‘안전행정부’ 기능이 뒤따르지 못한 채 순서만 바꿔 개편한 조직, 박 대통령의 의지와는 달리 그 ‘안전’은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이름뿐인 그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위기대응 시스템, 각종사고ㆍ사고발생 시 지휘체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또 기존 시스템을 어떤 식으로 재정비할 것인지에 대한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단지 ‘안전’은 구호에 그쳤을 뿐이다. 물론 정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변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까지 국정에 바쁨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방문하고 최선을 다해 구조작업을 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평상시 ‘연습’은 실전에 임할 때 ‘실력’으로 나타나는 법이다. 그러나 그런 연습이 전무하다시피하니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도 구조실적이 없다는 비난을 받는다. 결국 '안전'을 위해 안전관련 부서를 만들었지만 행정직들의 인사잔치만 요란했을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구호 속의 ‘안전’과 현장의 ‘안전’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 다시는 이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지도감독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지도감독을 허술히 한 감독기관과 어리숙한 선장으로 인해 수백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우울해진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다. 그 중 난 어느 부류의 존재일까 생각해보자.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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