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지키는 정치를 하겠다. 국민을 믿고 국민의 바다로 나가겠다.”며 무공천 소신을 강하게 피력했던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철수 공동대표가 “국민과 당원의 뜻을 물어 결정하겠다.”고 한발 뒤로 물러섰다. 안 대표는 ‘여론조사+국민투표’에서 무공천을 관철하는데 “정치생명을 걸겠다.”며 ‘기초선거 무공천’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안 대표의 이 같은 판단은 당내 계파간 정명충돌이 위기감이 고조되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안 대표의 전격적인 ‘무공천 재검토’ 발표로 ‘당’은 또 한 번 홍역을 치루게 될 것 같다. 이번 결정이 당내 갈등이 봉합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여론조사 방식으로 하는 것은 바보 같은 결정”이라며 “결국 공천제 유지로 가면 (대표는) 약속을 번복하는 셈이고 무공천이라는 기존 방침으로 가드라도 당내 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또 일각에선 조사방식에 여론조사 50%를 끼워 넣은 것은 무공천 강행 또는 철회에 대한 명분을 쌓기 위한 안 대표의 이중 포석이 아니냐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대통령에게 퇴짜 맞고 친노 압박에 밀린 안 대표. 한 때는 대표직을 내려놓고 백의종군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면서 김한길 공동대표를 당혹하게 만든 안 대표다.

‘기초선거 무공천’의 실천은 사실 안 대표가 새정치연합으로 합당할 때 가장 큰 명분이었던 일종의 도덕률이었다. 안 대표가 지방선거의 프레임을 ‘약속정치’ 대 ‘거짓정치’의 선악구도, 도덕 문제로 몰아가려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공방 속에서 정작 지방선거의 주인공인 국민은 외면당했다는 것이다.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후보들이 모조리 무소속이면 유권자들은 무엇을 보고 투표를 하라는 것인지 묻고 싶다. 사탕발림, 거짓 공약으로 도배질 되어 있는 선거공보만 대충보고 후보를 고른다는 게 새 정치인가. 이번에 선출될 기초단체 공직자는 3000여명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자리에 도전하는데 그 자리에 몇 배가 되는 후보자를 어떤 기준으로 선정할 수 있단 말인가.

유권자는 그동안 인물과 정당을 기준으로 선택해왔다. 그런데 정당이 없는 후보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새정치연합’에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이제 와서 무공천을 철회하면 기초든 광역이든 이길 자신이 있겠느냐고. 자신의 명분을 지키자고 유권자와 선거판을 이처럼 혼돈에 빠뜨리는 행태는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다.

기초선거 무공천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사안이다. 기초선거 공천은 장점도 있겠지만 단점도 큰, 논란 많은 ‘선거의 룰’에 불과할 뿐이다. 선악(善惡)의 잣대로 판단할 이슈가 아닐 뿐더러 합당 명분으로도 함량미달이다. 그럼에도 안 대표가 다른 시급한 민안사업을 외면하며 마치 이 문제가 국가의 운명이 걸린 것처럼 청와대를 방문하고 거리에 천막을 치고 떠들어 대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은 모습이 아니다.

아무래도 정치 초년생인 안 대표의 판단착오인 듯 싶다. 성급하게 이번 지방선거에 ‘무공천’을 띄운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치 경험도 없는 안 대표가 현실정치에 너무 깊이 들어온 것 같다.  안 대표의 정치적 책임론이 불거질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달 26일 무공천을 통합 명분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지 13일만에 안 대표가 후퇴했다. 중간 성적표도 영 말이 아니다.

또한 신당 지지율도 ‘도로 민주당’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날이 갈수록 안 대표의 약발이 희미해지는 느낌이 든다. 고비 때마다, 결정적일 때 급선회하거나 발을 빼는 모습을 천연덕스럽게 재연하는 안 대표. 이제 안 대표는 더 이상 박대통령을 거짓말 정치인이라고 비난할 수 없게 됐다. 기초 무공천에 관해서는 두 사람은 오십보 백보다. 이 같은 안 대표의 후퇴는 또다시 ‘철수(撤收)정치’ 논란을 낳고 있다.

2011년 5%의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 양보, 2012년 11월 대선후보직 사퇴에 이어 기초선거 무공천을 고수하며 합당하고, 다시 한발 물러남에 따라 네 번째 ‘철수정치’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리는 불살랐다’는 다짐도 물거품이 된지 오래되었고 ‘백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던 당도 미숙아로 한달을 견디지 못하고 이제는 그의 야심작인 ‘정책선거’도 시들해지며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핵심 측근인 최장식, 김성식, 윤여준 등이 떠나면서 신비주의도 허물어졌다. 그가 그렇게 심혈을 기울였던 광주에서조차 호된 질타를 받은 바 있다. 당 대표치고는 너무도 얕은 지식과 미숙한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말은 하면서도 그 말에 대한 책임은 지려고 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 오직 승리만을 위해서 뛰겠다는 발상은 국민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줄 뿐이다.

어느덧 안철수 현상이 시들해지면서 이제는 그의 자질론까지 나오고 있다.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사안을 냉정하고 종합적으로 보는 능력일 것이다. 그런데 안 대표는 여당, 정부에 책임을 전가시키는 선동적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국민들은 기존 정당에 대한 실망과 힘들게 하는 사회구조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불만 때문에 새로운 지도자를 원하는 과정에서 안철수 현상이 일어났을 뿐 ‘안철수’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안철수가 정치권에서 떠나든 말든 기존 정치권이 변화되지 않으면 또다시 제 2, 제 3의 안철수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어찌된 까닭인지 안철수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했던 자칭 시골의사 박경철의 모습은 선거판 그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다. 단순한 안철수가 자칫 선거 패배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고 호랑이를 잡기는커녕 오히려 잡아먹일지도 모르겠다. 정치판이란 윤리, 도덕도 없고 잔인한 곳이다.

한동안 여야 모두에서 논란이 거듭되었던 기초선거 무공천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사람 모두 국회의원의 특권을 삭감하고 지방자치를 중앙당의 예속에서 해방시켜 주겠다며 국민에게 약속한 정치분야의 핵심 공약이었다. 한국 정치 시스템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이상적인 제도였다. 그러나 눈앞의 승리가 더 급한 한국의 정당 문화, 혼란을 피하고 싶어 하는 유권자 현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정치권이 지방자치를 중앙당, 국회의원의 수하처럼 부린 것에 일말의 반성을 느낀다면 지금이라도 국회에서 기초선거 무공천을 위한 입법안을 발의하고 추진해 다음 선거에 기초선거 무공천을 위한 입법안을 적용하면 된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물 먹는 하마처럼 혈세만 낭비하는 기초단체장, 기초의원을 없애는 것이다.

최근 시청 앞에 새정치연합이 천막을 쳐놓고 안철수 ‘무공천’에 동의하는 사인을 받는 자리에 십여명의 시민들이 몰려와 말바꾸기 명수인 안철수를 질타하는 모습을 보았다. 새정치연합은 이런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되 착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꽃방석에 앉으려던 안철수 공동대표, ‘토사구팽’ 될까 염려된다. 아무리 정치권이지만 ‘배신’의 날이 예상외로 빨리 찾아오는 것 같다. 다시 안철수 현상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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