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위대한 지도자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얼마 전 운명을 달리했다. 그는 남아공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류의 정신적 지주였다. 이를 입증하듯 전 세계 국가 원수들까지 조문을 오는 등 장례식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는 가혹하리만치 잔혹한 흑색 인종차별국가에서 태어나 차별정책 폐지 운동을 하다가 27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그런 삶을 살아온 만델라였지만 그는 1994년 대통령이 된 뒤 자신과 흑인들을 탄압했던 백인들을 조건 없이 용서했다. 그 같은 그의 행보로 인해 죽어서까지 세계적으로 추앙을 받는 지도자로서 역사에 기록되어질 것이 분명하다. 돌이켜보면 지구상에 인류가 존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계층간, 인종간, 국가간, 지배ㆍ피지배 관계를 형성했던 많은 국가들이 전쟁을 치루면서 피바람이 불었다.

독립을 하기 위해서, 정권 탈취를 위해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다. 종교인, 지식인, 학생들이 연일 반정부 시위를 벌이던 월남도 공산화되어 버렸고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된 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벌어진 ‘인종청소’ 거슬러 올라가면 나치 히틀러로 인한 수백만명의 유대인(이스라엘) 학살, 가까이는 북한의 정적들에 대한 숙청작업 등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남아공 역시 잔혹한 인종차별 정책을 펼쳐왔던 백인정권에 대해 흑인들에 의한 참혹한 혈전의 보복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때에도 만델라는 용서와 화해를 부르짖으며 흑인들을 어우렀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않는다’는 그의 화해정책으로 그나마 남아공은 상대적으로 큰 혼란을 겪지 않고 평화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 이 같은 만델라의 ‘화해정책’은 남미국가들의 민주화 과정에서 전범(典範)으로 이어졌고 이들 국가도 ‘혁명’의 후유증을 최소화 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만델라의 ‘용서와 화해’는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도, 따르기도 어려울 정도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 첫 부통령에 백인정권의 마지막 대통령을 임명했고 흑백 차별정책의 정보책임자와 자신에게 종신형을 구형했던 검사를 대통령 관저에 초대해 극진한 대접을 했다는 일화도 추억거리가 되었다. 또 자신이 투옥됐던 감옥의 교도소장을 대사로 파견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증오를 배운다면 사랑도 배울 수 있다”는 자신의 신념을 몸소 실천하며 만인에게 귀감이 되는 지도자가 되었다. 만델라가 실천한 조건 없는 용서를 다시금 생각해 보자.

조건 없는 사랑을 기초한 만델라의 용서는 상대방의 불친절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고 상대방의 반응과 무관하게 조건 없이 실천한 용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그런 용서에 대해 가장 ‘이기적인 사랑’이라고도 한다. 얼핏 이해가 잘 안되겠지만 용서란 타인을 위해서 하는 것 이전에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란 뜻이 담겨 있다. 즉 타인에게 주는 혜택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는 혜택이라는 것이다. 타인을 살리기 이전에 자신을 살리는 것이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만델라의 용서는 타인을 배려하기 위한 선물같지만 사실은 자기를 위한 선물인 것이다.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아직 타인을 사랑할만한 마음이 충만하지 않아도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용서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용서란 이기적인 사랑임에는 분명하다. 물론 여기에서 만델라의 용서를 이기적인 동기를 먼저 앞세웠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만델라는 용서받을 사람보다는 오히려 용서하지 못해 고통의 몸부림 가운데 있던 사람이다.

오래 전 한 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상담사로 근무할 때 한 중년부인이 상담실을 찾아왔다고 했다. 상담을 하면서도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고 간혹 분노가 서린 얼굴이 되었다고 했다. 30여년 전 양가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와 결혼해서 자식들도 다 키워 출가까지 시키고 이제는 편히 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느닷없이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이 죽기 전 그래도 소원이라도 들어줄 량 “소원이 있으면 말해봐요.”했더니 남편이 힘겹게 입을 열어 한다는 소리가 “그 동안 몰래 사귀는 여자가 있었는데 미안하지만 죽기 전 얼굴이라도 보고 죽으면 원이 없겠다.”고 했단다. 그 소리를 듣고 너무 기가 막혀 그 자리에서 실신을 하고 말았단다. 잠시 후 의식이 돌아왔을 땐 이미 남편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이 너무도 기가 막혔다.

처음에는 남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몇날을 불면의 날로 보내며 괴로움 또한 컸다고 한다. 그러나 다음순간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남편에 대한 독기서린 눈빛으로 변하면서 배신감과 끓어오르는 증오심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녀는 상담을 하면서도 생각할수록 ‘죽이고 싶을 만큼 밉다’고 했다. 분명 남편은 이미 죽고 없다. 죽은 남편을 이제와서 미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용서할 기회조차 없었으니 이렇게 사람이 망가져 버리는 것 같아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신이 고통을 느끼며 망가지는 것이다. 그 후 결국 그 여인은 몇 차례의 상담을 거쳐 다시 웃음을 찾으며 남편을 무조건 용서했다. ‘용서는 타인을 위한 선물이기 전에 자신을 위한 선물’이다. 죽은 남편을 향한 증오심을 뱉어버린 여인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우리 사회는 지금 ‘분열의 시대’를 맞이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신문을 봐도, 방송을 보아도 신물이 날 정도다. 온통 미워하고 다툼만 있다. 국회는 아수라장이 되어 막말이 난무하고 보수와 진보간에 극심한 이념대결,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의 격차, 노사간의 갈등으로 인한 장외투쟁, 세대간ㆍ계층간 의사불통, 이 모두가 우리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제라도 우리가 만델라가 남긴 ‘위대한 용서와 화합의 정신’을 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남아공의 흑인들은 만델라를 뒤따라 자신들을 무참하게 짓밟았던 백인들조차 용서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그 만큼 미워하고 증오할 사람도 없지 않는가!

“우리를 진정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외부의 태풍이 아니라 멋대로 굴러다니는 내부의 대포다.” <빅토르 위고의 단편 93>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렇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부분은 외부의 압력과 시련이 아니다. 바로 내 안에 있는 증오, 원한, 분노라는 이름의 대포다. 나 자신이 편히 살기 위해서도 조건 없는 용서를 하자.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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