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간 불복과 헐뜯기 정쟁이 점차 장기화되면서 국론분열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온 나라가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설상가상 불난 집에 휘발유를 뿌린 것처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일부 신부들의 일탈적 언행이 더욱 더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댓글 관련 특검을 필두로 북한의 서해도발 문제까지 막말이 터지는 등 국론이 양분화 되어 갈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치ㆍ이념 성향에 따라 자기주장은 강조하면서도 반대편은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급속도로 조성되고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정의구현사제단은 지난 74년 유신정권에 항거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출범한 임의단체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루어진 87년 이후 사제단은 89년 문규현 신부가 방북해 김일성의 시신을 참배하고 귀경한 이후부터 이념색 짙은 사실상의 정치활동을 하면서 반미 노선을 더욱 선명히 했다.

그런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이 최근 군산의 한 성당에서 미사를 갖고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을 비판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한 것은 논리적으로나 국민정서로나 이치에는 전혀 맞지 않는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이 잘못되었더라도 대통령의 사퇴요구는 무리다. 그 점에서 전주교구 박창신 신부의 발언은 국민들을 경악케 하고 있다.

박창신 신부가 쏟아 논 극단적 발언은 분열병에 빠져있는 한국사회를 또 한번 시험에 빠지게 한 것 같다. 유권자 3000만명이 투표에 의해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선거절차로 뽑힌 대한민국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가 하면 한국의 영토 경계선을 부정하면서 우리 군인과 민간인 5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북한정권을 두둔하는 듯한 박 신부의 발언은 정상인의 말이라고 볼 수 없다. 종북이냐, 반미냐를 따지기보다 비상식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계와 시민사회, 정치권이 박 신부의 말을 비판하는 측과 옹호하는 측으로 또 대립을 하면서 국민을 걱정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불교와 개신교 일부 승려, 목사들마저 시국선언이라는 이름으로 극단적인 정치행사를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개신교 쪽의 한 단체는 ‘정권퇴진을 촉구하는 금식기도’ 계획까지 했다고 한다. 아주 대놓고 대선불복론을 확산하겠다는 자세다.

시국미사 발언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박창신 원로신부는 자신을 종북(從北)이라고 비판하는데 대해 자숙은커녕 반박을 하고 있다. 그는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북한과 교류하고 더 발전시킬 수 있었는데 정권이 바뀌니까 바로 종북몰이로 가기 위해 북한을 적(敵)으로 만들고 있다며 아전인수격으로 현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또 논란이 되고 있는 북방한계선(NLL)은 문제가 있는 지역인데 그 땅에서 한ㆍ미 군사운동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하겠느냐 전쟁이 나던지, 국지전이 나던지 그럴 수밖에 없는데 그걸 우리 군과 정부가 빌미를 제공하니 북한에서 쏘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그의 발언 맥락을 보면 마치 우리가 연평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는 듯 비칠 수 있다. 또 북한이 연평도를 공격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전사자와 그 유가족 그리고 군 장병들의 심경은 눈꼽만큼도 배려하지 않은 채 북한의 반인륜적 도발을 당연시했다. 이게 신(神)을 믿는 대한민국의 신부인가. 그것도 연평도 도발 3주기에 입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반면 인권이란 개념조차 없는 북한의 3대 세습정권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하며 비판도 하지 않았다. 야당조차 감히 꺼내지 못하는 ‘대선불복’의 선을 훌쩍 넘어선 꼴이다.

이런 박 신부의 발언은 상당수가 사실과 다른 것이 많다. 그는 천안함 사건을 거론하며 “이지스함에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게 세 척이나 있다는데 엄청난 그 눈을 가지고 훈련을 하고 있는데 북한 함정이 어뢰를 쏘고 갔다? 이해가 갑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천안함이 폭침당한 2010년 3월 해군이 운용 중이던 이지스함은 세 척이 아니라 세종대왕함 한 척이었고, 그 당시 세종대왕함은 당시 서해에 있지 않았음이 입증된 바 있다.

또 “NLL은 북한과 무관하다”는 주장도 그렇다. 1991년 남북이 합의한 기본합의서엔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 온 구역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북한도 사실상 해상의 경계선으로 NLL을 인정해 온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NLL을 부인하는 전략을 써온 북한의 주장을 어리석게도 박 신부가 여과없이 되풀이 하며 북한을 두둔하는 것처럼 내비쳤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442항은 “정치구조나 사회생활의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 사목자들이 할 일이 아니다”로 시작한다. 사제의 직접적인 정치개입을 금지한 것이다. 공공연히 정치활동을 하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일부 신부들은 이를 위반하고 있다. 정교(政敎) 분리를 명시한 헌법정신에도 어긋난다. 대한민국은 정교 분리국가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정치는 종교와 분리된다’고 헌법 20조에 명시되어 있다.

종교지도자는 항상 자신이 기독교를 대표한다는 생각을 갖고 말과 행동이 일치되어야 하고 이에 따른 책임과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종교지도자들의 정치적 발언과 행동 등이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정교 분리에 있어서도 분명 위배문제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신부는 “민주주의가 붕괴되고 유신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했는데 그처럼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대통령 하야’를 요구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면 그 정의감과 용기로 평양에 가서 미사를 집전해 주면 어떨까? ‘김정은 사퇴’를 외치면서 말이다.

이민족인 몽골의 대통령조차 김일성대학에서 “영구히 지속되는 폭정은 없다”고 한 말은 들어보았는지 신앙적 자기 과신이 너무 확고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일개 단체가 ‘대통령 사퇴’를 요구할 일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싶다. 민주당에 의한 허위 폭로가 자행됐던 2002년의 대선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서는 한번도 비판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된다.

정진석 추기경을 ‘골수 반공주의자’라고 비난했다가 천주교인은 물론 국민들로부터도 외면을 받고 있는 정의구현사제단은 2000년 이후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편향된 행태를 보이면서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한ㆍ미 FTA 반대,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반대 집회,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반공법 폐지운동 등에 단골로 개입해 반정부, 반미활동을 해온 임의 단체다. 사람따라, 정당따라 신부들의 잣대가 달라지는 것인가? 아니면 마초이즘이 신부들의 고결한 영혼까지 갉아먹는 것일까?

이번에 막말을 서슴지 않고 쏟아내는 박 신부는 문정현, 문규현 신부와 더불어 정의사회구현사제단 ‘전북 트리오’로 불리는 은퇴신부다. 누가 뭐라해도 박 신부의 발언은 돌출된 일과성 망언이나 실언이 아니라 일정한 목적의식을 지니고 소신을 갖고 감행한 의도적 발언이다. 특히 대선불복은 선거라는 민주주의 절차의 근간을 훼손하고 생산적 정치를 파괴하는 행위다.

박 신부는 길 잃은 양을 구하지 못한 채 스스로 길을 잃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부 민주당 의원 논란이 된 사제단 원로신부와 시국미사를 드리는데 어부지리로 무엇인가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건 착각이다. 차제에 민주당은 박 신부의 망언에 대해 어물쩡하지 말고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행여 종교계의 극단적 주장에 합류하면 야당의 투쟁역량이 강화되고 박 대통령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내년 6월 지방선거의 합승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헛된 믿음은 버려야 한다. 국민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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