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唐)나라 시절, 서슬퍼런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신하 중 누사덕(婁師德)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처지였다. 그런데 하루는 그의 아우가 대주자사(代州刺史)라는 자리에 임명되어 부임을 하게 됐다.

이때 ‘누사덕’은 아우를 불러 이렇게 당부하며 물었다. “너와 내가 황제의 총애를 받아 다 같이 출세하니 주위의 시기와 음해가 있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너는 그런 시기와 시샘, 그리고 음해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신하면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아우가 이렇게 답했다. “비록 남이 제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결코 기분 나빠하거나 화내지 않고 잠자코 닦아 내겠습니다. 매사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응대해 결코 형님에게까지 걱정이나 누를 끼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겠습니다.”

그러나 아우의 이런 즉답을 들은 누사덕은 반색하긴 커녕 더욱 걱정어린 낯빛으로 타이르듯 말했다. “내가 염려하던 바가 바로 그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네게 침을 뱉는다면 그것은 네게 무엇인가 단단히 화가 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네가 바로 그 자리에서 아무말 없이 침을 닦아 버린다면 그것이 오히려 상대의 기분을 거스르게 되어 그는 틀림없이 더 크게 화를 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사실 침 같은 것은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자연히 마르게 되는 것이니 그런 때는 침을 닦아낼 것이 아니라 그냥 마르도록 내버려 두는 게 상책이다.”

몇 년 전 이야기지만 언론인 조갑제 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필생의 어록에서 뽑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는 말을 그대로 책 제목으로 선정해 ‘박정희 일대기’를 펴내자 교수로 있던 진중권 씨가 그 특유의 이죽거림을 담아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고 응수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온 천지가 서로 내뱉은 침 투성이다. 국정원 사건, 전 노무현 대통령 LNN 기록삭제, 채동욱 사건, 복지문제 등을 둘러싼 공방전 속에 서로 내뱉은 침이 지천이다. 하지만 이제 정말이지 침은 그만 뱉자. 그리고 누군가 뱉은 침이 얼굴에 묻었거든 굳이 애써 닦아 내지도 말자. 설사 흔적이 남을지라도 말이다.

‘누사덕’의 ‘타면자건’ 고사에서처럼 그냥 마를 때까지 내버려 두자. 그래야 이 지겨운 논란이 끝나지 않을까 싶다. 침 타(唾), 낯 면(面), 스스로 자(自), 마를 건(乾) 즉 ‘타면자건(唾面自乾)’이다. 누군가가 내 얼굴에다 침을 뱉었을 때 이것을 곧장 닦아 버리면 침 뱉은 사람의 분이 풀리기는커녕 더욱 화가 나서 싸움이 더 크게 번지기 쉬우니 차라리 상대가 뱉은 침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당나라 때의 고사성어다.

정치인이나 기업인이나 노조단체나 아직도 우리는 서로 침 뱉기 바쁜 가운데 논란과 공방만 일삼으니 솔직히 부끄럽다 못해 절망감마저 든다. 한편으로는 청문회 때 그렇게 신랄하게 비판을 하던 사람들도 말끔하지 않은 과거사가 들춰지는 등 과거에 발목이 잡혀 지탄을 받는 모양이 안타깝기만 하다.

국민경제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정원’ ‘채동욱’ ‘복지’ 등에 대해 ‘옳다’ ‘정치적 남용’이다 하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하는 꼴이 한심하고 답답하다. 이젠 정말이지 한 차원 높은 미래로 나아가야 되지 않을까. 가을을 타는 남자들에게 쓸쓸한 바람이 부는 이 계절은 괴롭기만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을이 쓸쓸한 이유는 정치, 경제가 혼론스러워서가 아니라 안식의 품으로 영혼을 부르시는 창조주의 초청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아무리 놀만큼 놀아보고 쓸만큼 써보고, 예쁜 여자와 함께 즐길만큼 즐겨도 결국은 혼자가 되어 허전하고 쓸쓸한 것이 우리 인간이라네.

우주 속에서 물방울처럼 연약하고 비참한 인간, 그러나 바로 그 갈대처럼 연약한 인간이 여전히 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이유는 자신의 비참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간을 일명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지 않던가. 남에게 침을 뱉기 전 자신을 먼저 돌아보자.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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