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깊어지면서 지긋지긋한 장마가 시작된다. 장마철이 되면 불편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바깥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 어쩔 수없이 거리로 나가야 하는 출근길이나 등하교길엔 예외없이 신발과 옷이 흠뻑 젖는다. 또 산간지역에서는 계곡물이 갑자기 불어 산사태가 일어나는 등 재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그렇다고 장마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요모조모 따져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한 해 동안 내리는 비의 절반 이상이 이 기간에 집중된다. 따라서 장맛비를 흠뻑 머금어야 산과 들녘에 핀 풀과 나무가 푸르게 쑥쑥 자란다. 그러나 장맛철에 비가 충분히 내리지 못하면 가뭄이 되어 농작물에 피해를 주게 된다. 결국은 지긋지긋하게 내려 불편함을 느껴도 부족할 때면 아쉽고 간절히 바라는 게 바로 장맛비인 것 같다.

그래서 장마의 두 얼굴을 생각해 보았다. 우리의 삶도 어찌보면 장맛비처럼 양면성이 있는 것 같다. 한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한 부부가 있었는데 아내는 사소한 일에도 걱정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모든 일에 염려와 걱정으로 가득 차 있고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까지도 염려와 걱정의 언어뿐이었다. 보다 못한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당신이 하도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해서 내가 오늘 사람을 하나 고용했어요.” 하자 아내가 대뜸 무슨 사람을 고용하느냐고 했다. “응, 한달에 300만원씩 받고 당신의 걱정을 대신 해주기로 했어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당신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돼요.” “그게 말이 돼요? 더구나 한달에 300만원을 주면서까지…그 돈을 어떻게 할 거예요?” “돈은 걱정하지마. 걱정하는 것은 그 사람 몫이니까.”

우리가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과 염려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촌철살인으로 지적하는 유머가 아닐 수 없다. 한 때에 불과한 장맛비를 보고 걱정을 하고 불편함을 느끼듯 우리는 너무 사소한 것에,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에, 특히 일어날 가능성조차 없는 미래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염려를 하고 걱정을 한다. 그 같은 염려와 걱정은 결국에 가서는 우리 인생을 부정적으로 몰고 가고 심지어는 낙담과 절망의 늪에 깊이 빠지기도 한다.

과학이 발전하고 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 염려할 것으로 가득 차게 된다. 편리한 것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많은 것을 알면 알수록 더 걱정할 것이 많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항상 무엇에 짓눌려 있는 것 같은 마음으로 살다보니 자연스레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일고 있는 우울증 문제는 또 다른 측면에서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우울증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depression’ 이를 직역하면 ‘무엇엔가 짓눌린 상태’다. 그리고 그 짓누르는 주체를 우리는 흔한 말로 ‘스트레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대인들을 짓누르는 스트레스는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을 만큼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현재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침체와 이에 따른 부작용들이 가장 큰 주범으로 지목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겪는 입시지옥 현상부터, 젊은이들의 일자리 찾기에 이어 노년층의 빈곤과 소외에 이르기까지 경제문제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의 반만년 역사 중 오늘날처럼 풍요로운 시대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웬만한 사람은 가히 ‘왕’의 수중에서 먹고 산다. 비록 최근들어 경제빈곤과 썩은 정치로 절대 다수 국민들에게는 견뎌내기 힘든 고통이 분명했지만 이런 고통은 어디까지나 ‘상대적 고통’일 뿐이다. 그런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유명 백화점들이 명품행사를 하는 행사장에는 여전히 구매희망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 중에는 자칭 정말 하루가 살기 힘든 사람들도 상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암튼 이제부터라도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과도한 비교의식에서 비롯된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 소외감을 과감히 내려놓고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감사하는 마음이 되자. 우선은 가깝게 우리 밥상 위에 올려진 밥 한 그릇, 김치 한 조각부터 감사해 보자.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다닐 수 있다는 것, 살아 있어 두려움과 아픔으로 걱정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보자.

그래서 오늘도 밝은 하늘과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을 보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행복인 것을 알고 감사하는 우리가 되자. 일상의 감사를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기초다. 충충한 장마가 지나가고 나면 햇볕이 쨍쨍 내려 죄는 무더위가 올 것이다. 그 후에는 우리를 시원하게 하는 가을이 찾아올 것이다. 계절 같은 삶이기에 염려하거나 걱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세상은 결코 우리에게 평안함만을 주지는 않는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많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 말씀이다.

[시인.칼럼니스트.국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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